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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듯 특별한, 강원도 강릉 마을을 여행하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과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강원도 강릉 명주동과 평창 이효석문화예술촌, 두 마을을 여행했다.

On December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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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무지개가 떴다. 자기만의 색을 유지하면서 함께해 가장 예쁜 모습으로 어우러지는 무지개. 마을 주민이 담과 길바닥에 손수 붓 들고 나와서 그린 그림은 주민의 꿈을 담았고 삶을 닮았다. 강릉의 옛 지명 ‘명주’와 같은 이름을 가진 명주동은 그만큼 오래됐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층층이 쌓인 동네다. 한국 대표 절경인 바다와 산, 강릉 여행의 또 다른 이유인 커피를 빼놓고도 강릉은 얼마나 풍부한 도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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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다 어느새 반하는 명주동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한 KTX가 강원도를 가로지른다.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창밖 풍경이 강원도로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한반도 전체를 지탱하는 듯, 이 땅의 무게중심을 잡는 듯 강인한 뼈대 같은 산은 간밤에 내린 눈으로 허리부터 꼭대기까지 하얗다. KTX 개통 이후 두 시간 만에 강릉에 도착하는 일은 일상이 됐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불과 몇 년 전에는 기차든 자동차든 ‘떠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찾던 먼 곳이므로. 강릉역 너머 눈 덮인 대관령과 맑은 공기가 반갑다.

오늘은 명주동 탐험을 나설 참이다. 골목에서 다정한 주민 해설사가 기다린다. 함계정 ‘카페명주동’ 대표는 명주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살이를 하다가 끝내 고향에 돌아왔다. 근처에 있던 시청이 이전하면서 쇠락해가던 원도심 명주동, 어여쁘고 추억 많은 내 동네를 사랑한 이들을 모아 벽에 길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꽃 가꾸기 달인인 주민이 제각기 ‘작은 정원’을 꾸려 골목에 내놓았고, 담벼락 안 낮은 지붕 집과 수십 년 키워온 나무가 골목 정원과 어우러졌다. 주민끼리 보아도 예쁜 것, 웃음 나오는 것이 입소문을 타더니 전국에서, 나아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마을 자랑이라면 자신 있는 주민은 해설사로 나서 여행을 한층 특별하게 했다. 이름하여 ‘시나미 명주’, 동네를 가꾼 이들이 동네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햇살박물관이다. 주민이 기증한 ‘솔’ 담배, 카세트 테이프, 괘종시계 등 손때 묻은 물건에서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이 떠오른다. 그 앞길은 한때 서울 가는 큰길이었다. 오전 8시에 출발한 버스가 오후 5시에 도착하던 시절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애틋하고 재미있다. 어디는 빨래터였고, 우물의 흔적이라 한다. 수도와 세탁기, KTX와 고속도로가 없어 무엇을 하든 시간과 힘이 훨씬 많이 들어간 날들. 지나갔으니 그저 웃고 마는, 꽃 같은 마을 주민의 공간이 따사롭다.

적산 가옥과 주택이 늘어선 골목은 ‘보는 여행지’이면서 ‘듣는 여행지’다. “여기 방앗간에서 고추 빻고 떡 해서 먹던 기억이 선명해요. 2층엔 국수를 널어 말렸지요.” 그 방앗간이 카페로 변모했다. “이 집은 창문이 길쭉하지요? 상엿집이라고, 상여를 모시느라 창을 크게 냈어요.” 걸음마다 해설사가 사연을 꺼낸다. 벽에 붙은 타일이 멋진 2층 카페는 친구네 집이었다 한다. “자주 놀러 간 집이 과거 모습 그대로 카페가 돼서 얼마나 좋은지요.” 해설사가 어느 담 모서리, 개구리 그림의 돌을 가리켰다. “요 담벼락에 자꾸 차가 부딪힌다 해서 눈에 띄라고 그려놨어요.” 자연석 모양에서 착안해 개구리로 색칠했는데 정말 그럴싸하다. 주민 해설사 없이는 전혀 몰랐을 이야기의 연속이다. 좁은 골목, 작은 마을 전체가 생활사 박물관이다. 연로한 주민을 위해 곳곳에 놓은 의자는 위치가 절묘해 포토 존으로 손색이 없다. 주민 해설사는 사진 교육까지 받고 기념사진을 멋지게 찍어주는 만능 가이드다.

‘천천히’를 뜻하는 강릉 사투리에서 따온 슬로건 ‘시나미 명주’처럼 천천히 걷다 마을에 빠져든다. 해설사는 내내 “좋다”, “예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을을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로 잘 도착한 추억,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추억. 두 바퀴를 돌아도 떠나기가 아쉽다. 고향이 또 하나 생긴 기분이다. 다시 기차를 타고 마을을 만나러 간다. 이번에는 평창의 이효석문화예술촌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누가 모르랴. 수수한 꽃밭에 달빛 흐드러진 풍경은 고단한 삶에서 잠시 잠깐 피어난 사랑이고 청춘이었으니. 1936년 발표한 소설은 80년 넘는 시간이 흘러서도 우리네 애처롭고 반짝이는 삶을 기록한 문장으로 감동을 전한다. 무엇을 보면서 자랐기에 그런 문장이 탄생했을까. 이효석 선생이 태어난 곳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TRAVEL TIP

문화가 있는 날-청춘마이크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기간에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린다. 청춘마이크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청년 예술가의 거리 공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4년 1월 20일부터 31일까지 강릉하키센터 앞 특별 무대에서 예술가 30여 팀이 다양한 공연을 펼쳐 거리를 문화로 물들인다.
문의 www.culture.go.kr/wday

CREDIT INFO
에디터
김현정()
사진
신규철
2024년 01월호
2024년 01월호
에디터
김현정()
사진
신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