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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리> 류현경의 기록

연기를 시작한 13살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배우 류현경은 지치지 않고 연기해왔다. 쉬지 않고 성실히 연기하며 기록한 나날이 모여 오늘이 됐다.

On February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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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드레스 페이우, 글로브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류현경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채우며 살아왔다. 배우로서 자신의 쓰임을 생각하며 쉬지 않고 연기했고,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으로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아주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새해에는 새로운 다짐을 하죠. 배우 류현경의 새해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전해요. 촬영이 있으면 열심히 촬영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집에서 또 열심히 지내고. 1월 1일부터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긴 해요. 하루하루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거예요. 친구들과 10년 후에 서로 영상을 공개하기로 했어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너무 궁금해요. 어쩌면 그냥 평온하고 똑같을 수도 있겠죠. 오늘처럼 화보 촬영을 하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 타임랩스로 헤어 스타일링과 메이크업하는 과정을 찍어봐야겠다는 계획도 나름대로 세워보곤 해요.(웃음)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영상으로 기록하고요.

10년 후 오늘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볼 수 있겠네요.(웃음)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건 일종의 습관이기도 해요. 원래 그런 습관이 있었나요?
중학교 때부터 다이어리를 계속 썼어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도 좋아하고요. 얼마 전에는 10년 치 다이어리를 다시 한번 들여다봤어요. 그러면서 과거의 저를 반성하기도 해요. ‘아, 나라는 사람은 어쩜 이렇게 안 변했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옛일을 추억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해보기도 하죠.

요즘은 드라마 <트롤리>가 방영 중이죠. ‘진승희’라는 인물은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한 지점이 있어요. 그 인물을 스스로 납득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인물로 접근하기보다는 전체 스토리를 보고 그 캐릭터의 쓰임을 봐요. <트롤리>는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고 승희라는 인물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었어요. 승희는 말하자면, 2차 가해를 하는 인물로 피해자인 척하죠. 그런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아 그 인물을 이해한다기보다는 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승희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는 가족이 일종의 올가미가 돼버리죠. 복합다면적인 승희를 더 잘 연기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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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롱 재킷 에델린 꾸띄르, 화이트 부츠 자라.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대본의 결에 맞게 충실히 잘해야 한다는 것. 그 마음만큼은 변한 적이 없어요.

대본의 결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건 자신을 매우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어릴 때부터 연기했기 때문인지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에 익숙해요. 부유하지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똑바로 저를 바라봐왔어요.

방송 중이지만 이미 촬영을 다 마친 작품이기도 해요. 오늘 문득 떠오르는 촬영 현장에서의 순간이 있나요?
연기할 때면 촬영장의 모든 이들이 저에게 집중하는 에너지가 떠올라요. 온전히 배우에게 그 에너지가 모여 그 기운을 받고 연기했어요. 연극할 때는 관객이 그 에너지를 주죠.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이에요. 현장은 늘 즐거워요. 작품을 처음 접하고 리딩을 하고,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든 순간 신나 있어요.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에요. 몇 년간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대한 부담감 같은 게 있었어요. ‘배우라면 이래야 해’라는 선입견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아마도 부모님과 함께 살다 독립한 후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자유로워지니 현장이 더 좋고 신나고, 더 표현하고 싶어지더군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인물을 만났죠. 그중 가장 애틋한 인물이 있는지 궁금해요.
영화 <아이>의 ‘영채’라는 인물이 계속 생각나요. 6개월 된 아기를 혼자 키우는 워킹맘 영채는 촬영할 때도 애틋한 인물이었고,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워요. 극 중 제 아이를 돌봤던 ‘아영’(김향기 분)이와는 어떻게 지낼지도 궁금하고, 영채가 꼭 저 자신처럼 여겨졌어요. 처해 있는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살다 보면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잖아요. 영채는 그런 경험을 계속했던 인물이기에 그립고 애틋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다시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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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슈트 레호, 비즈 튤 앤아더스토리즈.


캐릭터나 작품의 크기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정말 좋은 작품에 제가 온전히 쓰일 수 있다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작품을 결정할 때 연기할 인물보다는 작품 속 이야기를 중요시한다고 말했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언제부터 확고해졌나요?
영화 <신기전>을 촬영하면서부터 평생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가 25살이었죠.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로 살아왔지만 그때 정말 연기가 재밌게 느껴졌어요. 김유진 감독님에게 평생 촬영장에 있고 싶은데 죽을 때까지 연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어요. 감독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죠. “잘 쓰일 수 있는 배우가 돼라.” 그때부터 쓰임새 있는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게 제 모토가 됐어요. 제가 잘 쓰일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다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캐릭터나 작품의 크기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정말 좋은 작품에 제가 온전히 쓰일 수 있다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신기전>의 어떤 점이 배우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짐하게 한 걸까요?
그 작품을 촬영할 때 8개월간 선배 배우들과 동고동락했어요. 많은 시간을 함께한 그 현장이 정말 즐거웠어요. 그러다 매우 중요한 감정 신을 촬영하는 날이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로지 제 감정에만 집중하고 있었죠. 그러다 감독님이 제 동선을 바꾸셨는데 제 감정까지 변하는 거예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죠. 동선 하나만으로 감정이 변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정재영 선배의 연기는 상대 배우의 감정을 정말 크게 움직여요. 감독님 그리고 상대 배우와 현장에서 이뤄지는 감정적인 교류를 느끼며 평생 연기하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 늘 뜨거운 온도로 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그 온도가 식었던 적은 없나요?
물론 있죠. 연기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기보다는 연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좀 누르던 시간이 있었어요. 몇 년 전쯤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는 선뜻 작품을 선택하지 못했어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이 힘들어 연기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눌러야 한다고 괜스레 생각해버렸죠. 하지만 그 시간을 무사히 잘 보냈고 다시 열심히, 더 열심히 연기하고 있어요.(웃음)

맞아요. 때로는 쉬어 가는 시간이 오히려 큰 에너지로 돌아오죠. 연기의 어떤 힘이 계속 배우 류현경을 즐겁게 하는 걸까요?
새로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저만의 말로 표현하는 게 즐겁죠.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재미있어 하고 몰두하는 감독님을 비롯한 여러 스태프, 배우들이 있는 현장이 행복해요.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몰입돼 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 저 역시 더 집중하게 돼요.

배우로서 열심히 연기해왔지만 독립영화 감독을 하기도 했고 전주국제영화제 객원 프로그래머와 무주산골영화제 홍보대사로도 활동했죠. 독립영화의 오랜 지지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립영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기보다 많은 관객이 다양한 이야기를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에요. 영화는 여전히 또 만들고 싶어요. 이것저것 계속 써보는 중인데, 언젠가 세월이 담긴 연애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해요.

독립영화뿐 아니라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적도 있어요.
가수 정인 언니는 저와 가장 친한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거의 매일 연락하는 사이죠. 오늘도 연락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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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벌룬 슬리브 셔츠 누마레, 넥타이 돌체앤가바나, 블랙 튜브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간관계의 폭이 정말 넓은가 봐요.
원래는 더 넓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힘들었던 시간에는 사람을 좀 덜 만났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라앉아 있는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들 덕이었어요. 제 옆에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복덩어리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거예요.

좋았던 시간과 그렇지 않았던 시간이 모두 더해져 오늘의 내가 되는 것 같아요. 오늘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전에는 자신을 잘 살피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현재에 충실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저를 좀 더 살펴요.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이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해요. 자신을 계속 뒤돌아보니 그게 힘이 돼요.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결국 저 자신이죠.

배우에게는 연기하는 시간만큼이나 연기하지 않는 시간도 중요해요. 연기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나요?
끊임없이 뭔가 보고, 들어요. 영화 보고 책도 읽고,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그리고 매일 1만 보 넘게 걷고 10분씩 명상을 해요.

오늘의 플레이 리스트를 들려주겠어요?
음, 영화는 <무드 인디고>. 어제 <무드 인디고>를 다시 봤어요. 다시 보니까 더 좋았어요. 오늘의 책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밝은 밤>을 읽다 보면 마음이 텅 비는 것 같아요. 그 텅 빈 마음이 드는 게 너무 좋아요. 오늘의 음악은 역시나 뉴진스의 <Ditto>!

SNS에는 카메라에 대한 포스팅도 많더군요. 오래 사용한 카메라와의 ‘이별’ 포스팅도 봤어요.
니콘 카메라인데 수리하려고 갔더니 이제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거예요. 저의 20대를 같이 보낸, 친구 같은 존재였거든요. 옛날에 찍은 사진을 다시 찾아보면서 이제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필름 카메라의 정서는 제 마음을 묘하게 안정시켜요.

20대를 함께한 카메라에는 주로 어떤 모습들이 담겨 있었나요?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웃음)

지금은 주로 어떤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요?
돌아다니다 보면 사진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이 사진 프레임 안에 딱 담길 때마다 찍어요.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낮에 뜬 달이었어요. 겨울나무들 풍경도 많이 찍었고.

세월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배우로만 생각한다면 젊었을 때는 좀 더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연기했어요. 지금은 오히려 연습을 더 많이 해요. 한 장면을 위해 거의 100번 넘게 연습해요. 혼자 다양한 버전으로 연기해보고 준비하는 시간이 좋아요.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것과는 또 다른 힘이 있어요. 그리고 연습을 많이 할수록 저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자신에게 기대되는 모습이 있어요?
지금의 제가 정말 좋아요. 10년 후에도 한결같기를 바라요. 좋아하는 것에 열광할 줄 알고 ‘나다운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이고자 해요.

CREDIT INFO
에디터
서지아(진행), 박민(인터뷰)
사진
이수진
스타일링
조아름
헤어
난영(룰루)
메이크업
지아(룰루)
2023년 02월호
2023년 02월호
에디터
서지아(진행), 박민(인터뷰)
사진
이수진
스타일링
조아름
헤어
난영(룰루)
메이크업
지아(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