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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속에서 패션을 찾아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옷을 마음대로 섞어 입는 것은 물론, 기존에 있던 옷을 찢고 뜯고 붙여 새롭게 재조합한다? 트래션(Trashion, Trash+Fashion) 혹은 새로운 21세기 버전 해체주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

On October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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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프로그램을 한창 열심히 보시던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얘, 요즘엔 요리도 정석이란 게 없더라.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면 그게 요리가 되더라니까.” 이후 시어머니는 연어 넣은 카레라이스나 삼치 넣은 샌드위치 등 나름의 아이디어로 색다른 요리를 완성해냈다.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하며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패션도 마찬가지. 과거 정석으로 여겨지던 패션은 이제 지루해졌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입는 이들이 패셔니스타로 등극했다. 마치 콜라주 혹은 스크랩을 하는 것처럼 기존의 의복 형식을 마음대로 비틀어 완성한 해체주의 패션! 1980년대 초 파리에서 활동한 일본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로 시작돼 마틴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등으로 이어진 패션계의 해체주의적 트렌드는 ‘아방가르드’ 스타일이라 불리며 세상에 알려졌다. 찢어지고, 마감하지 않아 올이 풀리고, 안감을 그대로 노출해 미완성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 사이즈가 지나치게 커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 같은 느낌도 좋다. 어르신들이 보고 눈살을 찌푸릴수록 성공적이랄까? 과거의 해체주의가 관습에 대한 반항의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의 해체주의 패션은 개인적인 성향이 훨씬 짙어졌다. 마음대로 할 권리와 자유에 대한 선언인 셈. 루이 비통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린 2022 F/W 시즌 컬렉션을 통해 상반된 것들을 섞는 믹스매치 아이디어를 펼쳐 보였다. 모델 겸 배우 정호연이 화이트 셔츠에 넥타이를 맨 1980년대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오프닝을 시작으로 이질적인 아이템을 뒤죽박죽 스타일링한 모델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할머니의 꽃무늬 자카르, 엄마의 드레스, 오빠의 럭비 셔츠와 청키 스웨터 등을 마구 입은 어린아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빙고!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10대 청소년들이 옷 입는 아이디어에서 이번 컬렉션의 영감을 얻었다며, “사람들이 이번 루이 비통 컬렉션을 통해 패션에는 어떠한 제약이나 제한도 없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새로운 해체주의 패션은 ‘자유’를 갈망하는 MZ세대의 욕구에 더해 미래 환경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만큼 친환경적인 성향이 짙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00억 개 이상의 옷이 생산되며, 이 중 상당 부분은 한 번도 착용되지 않은 채로 소각된다. 통상 패션업계에서는 출시 후 3년이 지난 재고는 보관 및 사후 서비스 관리의 어려움으로 소각해왔는데, 환경오염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며 프랑스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법령-‘폐기물 방지 및 순환 경제법(Anti-waste and the Circular Economy Law)’-을 2022년부터 새롭게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구찌, 생 로랑, 발렌시아가 등을 소유한 케링 그룹은 재고관리를 위해 인공지능(AI)에 투자했다. 루이 비통 등이 속한 LVMH 그룹은 전문 의류를 기부받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에게 제공하는 크라바트 솔리데르(Cravate Solidaire)와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팔리지 않은 재고 의류를 모아 새로운 실과 원단으로 재활용하는 위턴(WeTurn)과도 제휴를 맺었다. 업사이클링을 ‘중계’하는 비영리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패브스크랩(Fabscrap)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로부터 쓰지 않는 소재를 수집, 재배포하는 대표적인 비영리단체다. 약 250개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브루클린의 패브스크랩 창고에는 매일 1,350kg에 달하는 재고 의류가 배달된다.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패브스크랩과 협업해 재고 원단으로 단열재나 가구 안감 등을 만들고, 학생들과 예술가들에게 기부해 창작에 사용토록 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런 시류에 따라 신인 디자이너들이 재고 소재를 컬렉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들은 어차피 쓰레기가 될 것을 재활용해 새로운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실제로 ‘컬렉션의 캐시미어 중 80%는 재활용 소재’, ‘기부받은 재고 원단으로 완성한 드레스’ 등의 컬렉션 노트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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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너 이브스의 해체주의 스타일. 2 마르니의 모헤어 데님 재킷. 3 마린 세르의 해체주의 스타일. 4 마린 세르는 에코퓨처리스트를 전개하고 있다.

1 코너 이브스의 해체주의 스타일. 2 마르니의 모헤어 데님 재킷. 3 마린 세르의 해체주의 스타일. 4 마린 세르는 에코퓨처리스트를 전개하고 있다.

마르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체스코 리소는 낡은 재료를 수선 및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실험을 2018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의자 대신 객석에 낡은 양탄자, 모래주머니, 폐타이어 등을 깔아 관객을 앉게 하고, 더플코트와 니트, 심지어 담요 등을 재활용한 2018년 컬렉션 이후 꾸준히 해체와 재조합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것. 마르니는 이번 2022 F/W 시즌에도 ‘웨어 애프터(Wear After)’를 테마로 울 재킷이나 가죽 라이더 재킷을 잘라 모자를 만들고, 헤링본 코트는 찢어져서 소매 부분이 거의 다 사라진 상태로 무대에 올렸다. 또 니트 셋업은 상하의를 바꿔 입었다. 아크네 스튜디오 역시 2022 F/W 시즌 컬렉션에 구제 숍에서 건진 옷을 활용했다. 구제 숍에서는 사이즈가 꼭 맞는 옷을 찾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해 정형화된 옷 입기의 공식에서 탈피한 일종의 아이디어였다. 커다란 티셔츠는 자르고 삐딱하게 입어 오프숄더 톱으로 활용하고, 오버사이즈 재킷은 사이하이 부츠를 매치해 원피스로 스타일링했다. 구멍 난 니트와 퀼트 담요로 원피스를 만들었고, 분해하거나 자른 데님을 다시 이어 붙여 패치워크 드레스로 완성하기도!

새로운 해체주의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마린 세르다. 2017년에 론칭해 LVMH 프라이즈 수상 이후 놀라운 상승세로 브랜드를 성공 궤도에 올려놓은 마린 세르. 그녀는 수명을 다한 옷이나 재고 소재를 업사이클하는 방식을 통해 ‘에코퓨처리스트(Eco-futurist)’라는 브랜드의 신념을 지키며 자신만의 문법과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버려진 옷감이나 스카프, 카펫 등을 활용해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컬렉션을 ‘리제너레이티(REGENERATED)’라 명명하고, 2021 가을 컬렉션에서는 모든 룩을 리사이클링으로 제작했다. 그녀는 아예 대형 창고에서 철 지난 옷을 살펴보는 것으로 컬렉션 구상을 시작한다고. 2022 F/W 시즌에는 컬렉션이 열린 장소 한편에 마린 세르의 작업실을 재현, 헌 옷을 수집해 자르고 다시 바느질하는 과정을 모두 보여줬다. 또한 브랜드 유튜브 채널에서도 데님 팬츠, 실크 스카프, 니트 재킷 등 재고 의류를 마린 세르 컬렉션으로 만드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마린 세르는 작업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일종의 ‘책임감’과 ‘의무’라고 표현했다.

마린 세르 외에도 초포바 로위나, 알루왈리아, 코너 이브스, 레이브 리뷰 등 현재 대세로 뜨는 신인 디자이너들도 헌 옷과 소재를 ‘해체’해 새로운 컬렉션으로 ‘조합’하는 해체주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있다. 알루왈리아는 오직 재고 직물로만 컬렉션을 완성하고, 코너 이브스는 빈티지 및 재고 의류만을 수집한 뒤 패치워크하는 과정을 통해 뉴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추종하는 의식 없는 소비는 개인적인 차원의 낭비를 넘어 결국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 이에 신진 패션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해체주의 트렌드를 통해 가장 영리한 해답을 찾아냈다. 때마침 다음 시즌 트렌드는 1990년대 그런지 패션이다.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자유분방한 ‘레시피’에 따라 옷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나만의 스타일을 창조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CREDIT INFO
에디터
문하경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각 브랜드 제공
2022년 10월호
2022년 10월호
에디터
문하경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각 브랜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