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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현의 세포들

복싱 유망주에서 모델로, 다시 배우로 전향한 안보현은 질주하는 중이다.

On December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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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체고를 졸업한 안보현은 복싱 유망주였다. 부산시 대표선수로 활동하며 아마추어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그는 실업 팀이나 체육대학 진학 대신 모델학과를 선택했다. 모델 학원을 다닌 적도 없고, 소속된 에이전시도 없었지만 몇 달 만에 서울컬렉션 무대에 올랐고 화려하게 모델로 데뷔했다. 하지만 그는 5년 만에 런웨이에서 내려왔고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안보현은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박서준 분)의 라이벌 ‘장근원’ 역을 맡아 ‘국민 밉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 네임>에서 정의감 넘치는 형사 ‘전필도’ 역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어 평범한 직장인 ‘유미’(김고은 분)의 연애와 일상을 머릿속 세포들의 시각으로 풀어낸 웹툰 원작의 로맨스 드라마 tvN <유미의 세포들>에서 솔직 담백한 알고리즘의 ‘YES or NO’ 사고법을 가진 게임개발자 ‘구웅’으로 열연했다. 안보현은 뼛속까지 공대생으로 감성은 부족하지만 단순 솔직함을 무기로 유미의 사랑 세포를 깨우는 구웅을 장발과 수염, 패션까지 싱크로율 120%로 표현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비록 <유미의 세포들> 속 구웅은 유미의 사랑을 얻지 못했지만 안보현의 애정 전선은 ‘이상 무’다.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안보현에게 숱한 여성 시청자가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 안보현은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란 수식어를 얻었지만 아직까지도 인기가 실감 나지 않는다.

“제가 만찢남이요? 아무래도 만화를 이상하게 찢고 나온 것 같아요. 긴 머리에 턱수염, 까만 피부를 한 구웅은 만화 속 남자 주인공의 전형적인 타입은 아니니까요.(웃음) 초반에 감독님께서 웹툰 속 구웅의 이미지를 떠나 자유롭게 스타일링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겉모습은 웹툰처럼 연출하고 싶다고 했어요. 원작 팬들의 기대감을 채워주고 싶었거든요.”

긴 머리를 연출하기 위해 가발을 사용했는데 기온이 점차 높아지는 5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터라 더위를 이겨내는 게 쉽지 않았다. 구웅 역을 맡으면서 긴 머리의 남성과 여성들을 존경하게 됐다는 안보현이다.

“제가 유전적으로 땀이 많은데 한여름에 통가발을 써서 힘들었어요. 긴 머리를 감은 후 말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혹시라도 머리에서 땀이 날 수 있으니까 촬영장에서는 뜨거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주로 냉메밀국수를 먹거나 식은 돈가스를 먹었죠.”

외적인 모습을 완벽 재현한 그에게 구웅과 내면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웅이는 답답하지만 어느 면에선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극에서 구웅은 자존심 때문에 연인인 유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로 인해 생긴 간극은 두 사람을 이별에 다다르게 한다.
“답답함의 ‘끝판왕’인 구웅이랑 전 달라요. 비슷한 점을 찾자면 타인에게 슬픔이나 아픔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지만 슬픔은 나눠도 줄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제 감정 때문에 상대방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슬픔이나 힘든 일은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죠.”

구웅은 운영 중인 회사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유미의 깜짝 프러포즈에 응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구웅의 반응에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안보현은 구웅에게 동감을 표했다. 연인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자고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웅이를 ‘똥차’라고 불렀어요. 저도 처음엔 구웅이 찌질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애잔하더라고요.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구웅이 안타까웠죠. 그런데 저 역시 구웅과 같은 상황이라면 연인의 행복을 위해 물러났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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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나 간절함으로 연기해요. 누군가가 간절하게 바라던 역할을 제가 맡게 된 것이니까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될 거예요.

나의 첫 멜로 연기는 70점

안보현은 구웅과 연애 스타일은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는 극에서 구웅과 유미 사이를 훼방을 놓는 ‘박새이’(박지현 분) 같은 여사친이 없다는 것. 연인에게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그는 특히 유미와 새이가 신경전을 벌이는데 구웅이 “유미야 그만해”를 외쳤던 장면에서 구웅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꼽았다.

“구웅이 내 측근이고 내 사람인 여자친구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유미야 그만해’가 아니라 ‘새이야 그만해’라고 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후 유미를 포옹하며 미안함을 드러내긴 했지만 내심 ‘이게 포옹으로 끝날 일이야?’라고 생각했죠.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올인하는 타입이라 구웅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 같아요.”

‘모태 순정남’이지만 안보현에게 멜로극은 도전이었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맡은 장근원 역의 비열한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상황이었고, 다부진 체형 때문에 남성스러운 캐릭터에 특화된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게 대본이 왔을 때 ‘이 대본이 왜 내게 왔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하며 감독님을 만났는데 제게 ‘대화할 때 웅이 특유의 순박한 모습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도전하고 싶었어요. 사실 멜로 장르를 좋아하기도 해요. 그런데 전작에선 제가 맡은 역할이 대다수 짝사랑하는 캐릭터라 아쉬웠어요. 이번에도 헤어지는 남자친구 역이라 아쉽고요. 언젠가는 예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맞는 캐릭터도 연기하고 싶어요.”

그는 자신의 첫 멜로 연기에 70점의 점수를 줬다. 잘했다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에 대한 점수였다. 100점까진 갈 길이 멀다는 그는 <유미의 세포들> 흥행의 공을 유미 역으로 출연한 김고은에게 돌렸다.

“김고은은 상대 배우가 캐릭터에 빠져들게 만드는 친구예요. 스스로 완전히 캐릭터 그 자체가 되거든요. 실제로 저는 고은이를 유미라고 부르고, 고은이는 저를 웅이라고 불렀어요. 아직까지 캐릭터에 과몰입한 상태죠. 고은이 덕에 멜로가 잘 그려진 거 같아요.”

그 때문인지 그는 유미와 구웅의 이별이 아쉬웠다. 극에서 유미와 구웅의 이별 장면은 두 사람이 속마음 카드를 꺼내는 것으로 표현됐다. 두 사람이 꺼낸 속마음 카드에 ‘헤어진다’ ‘이별’ ‘종료’란 말이 써 있었던 것.

“헤어지는 장면에서 만화적 요소가 들어가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캐릭터에 이입해 그런지 마음이 짠했어요. 카드를 뒤집었을 때 ‘결혼하자’는 말이 써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죠. 촬영 땐 유미와 이별하는 게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는데 시청자에게 구웅이 사업이 망해서 유미를 놔주는 것처럼 비칠까 봐 감정을 추스렸어요.”  


간절함을 연기하는 배우

안보현은 최근 가장 성장세가 무서운 배우다. <이태원 클라쓰>로 눈도장을 찍은 이후 MBC <카이로스>, tvN <유미의 세포들>, 넷플릭스 <마이 네임>까지 연이어 출연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티빙에서 항상 실시간 시청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마이 네임>은 전 세계 스트리밍 순위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지금의 기세를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돈을 벌기 위해 군검사가 된 ‘도배만’ 역을 맡아 이어간다.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네 번째 남자 캐릭터였고, <유미의 세포들>과 <마이 네임>에서는 조력자 역할을 맡았어요. 모두 주연배우가 아니었는데 운이 좋아서 많은 분이 기억해주신 것 같아요.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처음으로 주연배우가 된 건데 부담감이 피부로 와닿더라고요. 얼마 전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체력 관리를 안 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스스로 생각했던 인생 그래프보다 빠르게 목표에 도달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홀로 서울에 상경해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이라는 호기심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느리더라도 언젠간 주인공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데뷔 초나 지금이나 저는 간절함으로 연기해요. 수많은 사람과 경쟁해 따낸 역할이니까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죠. 과거엔 오디션에 합격하면 간절함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간절함이 부담감으로 바뀌더라고요. 제 안에 불안 세포가 있어서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편이에요.”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 과정은 그에게 불안감을 배가시켰다. 때로는 운동이 해방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단다.
“운동은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 동시에 압박을 주는 존재예요. 사람들이 배우 안보현에게 기대하는 지점을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몸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시로 입 안에서 볼을 깨물고 손목을 잡아보면서 살이 쪘는지 가늠해요.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을 하고, 닭 가슴살을 챙겨 먹어요. 이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운동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 싶어요.”

안보현에게 근육질 몸매를 관리하는 것은 일상이다. 365일 중에 300일은 운동과 식단 관리를 한다는 그는 <마이 네임> 출연을 앞두고 근육으로만 5kg가량 몸을 키웠고, <군검사 도베르만>의 군인이자 검사인 도배만 역을 위해 더 혹독하게 관리하고 있다.

“만약 제 배가 볼록하게 나왔다면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이입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늘 준비된 자세로 지내고 싶어서 평소에도 매일 운동하고 상황에 맞게 몸을 디자인하려고 해요.”

대중에게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은 그는 시청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때 뿌듯하다. 가령 “<마이 네임>의 전필도가 <유미의 세포들>의 구웅이라고?” 같은 반응을 들을 때다. 안보현은 그가 매번 다른 배우처럼 보일 수 있는 이유로 ‘머리발’을 꼽았다.
“제가 짧은 머리와 긴 머리의 이미지가 달라요. 지인들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다르죠. 어렸을 땐 헤어스타일 때문에 다르게 보이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배우로서 좋은 무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유로 작품마다 헤어스타일에 공을 들인다.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원작에서처럼 하루에 헤어 제품의 3분의 1을 사용하며 올백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분장 팀의 우려에도 “이 한 몸,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바쳐보자”는 고집으로 스타일을 완성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도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조신함을 얻었고, <마이 네임>에서는 극 초반과 후반의 머리 길이를 달리해 캐릭터의 심경 변화를 표현했다.

“헤어스타일을 이용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위해서라면 삭발도 할 수 있어요. <도베르만>에서는 군인이니까 짧은 머리를 해야 하는데 이제 곧 제 실체가 드러나겠죠?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시원하게 머리를 자르러 갈 거예요.”
그가 간절함으로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단연코 가족이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위해 열심히 한다는 그다. <유미의 세포들>을 보고 배우 김고은이 진짜 여자친구라고 생각하거나, 사업이 망해서 우는 구웅을 보고 “정말로 망했냐?”라고 묻는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손자를 자랑할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달려가겠다는 마음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저를 아들처럼 데리고 다니셨어요. 지금은 거동이 힘드신데 드라마는 보실 수 있으니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드리고 싶어요. 할머니를 생각해서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과거에 일일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비중이 적어서 저를 찾지 못하시더라고요. 이제 저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것 같아 손자로서, 배우로서 뿌듯하죠. 앞으로 더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안보현은 <유미의 세포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세포로 개구리를 꼽았다. 구웅의 마음속에 있는 개구리는 “개굴개굴”이라는 말만 하지만 유미를 위로하고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 안보현은 구웅의 개구리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를 선사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FN엔테테이먼트
2021년 12월호
2021년 12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FN엔테테이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