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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 페미니즘

On Octo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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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귀에 경 읽기도 백날 하면 효과가 있는 걸까? ‘알탕’이라는 비판을 받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 한국 방송국의 간판 예능을 떠올려보자. <무한도전> <런닝맨> <1박2일> <아는 형님> <삼시세끼> 등 남자들끼리 어울려 노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SBS <런닝맨>에는 고정 여성 멤버가 있지만 제작진이 2016년 본인 동의 없이 송지효를 하차시키려다 팬들이 반발하자 번복하는 소동이 있었다. 여성 멤버를 ‘구색 맞추기’ ‘대체 가능 인력’ 취급한 것이다.

물론 성공한 예능 중에 성별이 섞인 것도 있다. 예컨대 MBC <나 혼자 산다>. 하지만 기안84가 웹툰에서 동료 출연자인 ‘마마무’ 화사를 연상하게 만드는 캐릭터를 술집 접대부로 등장시키는 행동으로 논란을 야기했으나 두 사람을 한자리에 앉히고, 되레 그를 왕따 피해자로 둔갑시키기까지 하는 제작진의 행태는 방송인들의 위험한 성 인지 감수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여자만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더더욱 드물었다. 과거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한 여성 버라이어티 <무한걸스>(2010~2013)가 시즌 3까지 이어지는 호평에도 공중파로 편입되지 못한 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회의 차이였다.

다행히 시대는 변하고 있다. SBS는 수요일 오후 9시라는 나쁘지 않은 시간대에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방송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엘리트 체육인이 아니고서야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르고 지낸 운동의 재미를 이 프로그램이 찾아주고 있다. 모델 이현이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결혼도 출산도 아닌 축구였다”고 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 2는 최고 시청률 10%대를 기록했다. 남자들이 축구하는 예능 <뭉쳐야 찬다>(JTBC)보다 높은 성적이다.

싱글맘들의 육아 스토리 <용감한 솔로 육아 - 내가 키운다>(JTBC)도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며 서서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일상에서의 무능을 쉽게 용서받는 어른들(<살림하는 남자들>, KBS2), 육아가 아니라 저 놀기 바쁜 이혼남들(<신발 벗고 돌싱포맨>, SBS)을 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치유된다. 이 프로그램들에 ‘남성 MC 돌려 막기’ 대표 주자 이수근, 김구라를 투입한 게 ‘여전히 여성 예능은 불안하고 못마땅하다’는 방송국의 본심 같아서 섭섭하지만 일단 실눈으로 봐주자.

한편 SBS는 9월 말 <워맨스가 필요해>라는 새로운 여성 예능을 론칭한다. ‘뭉쳤을 때 더 특별한 우정이 돋보이는 여자들의 관계 리얼리티’라고 한다. 안산과 광주여대 양궁팀 선수들이 출연한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2015년 이후 할리우드는 여성 서사, 우먼 임파워링, 다양성 캐스팅이라는 화두에 골몰했다. 이런 시대정신을 먼저 반영한 건 위험 부담이 적은 채널들이었다.

대형 방송국들이 타성에 젖어 남성 예능인 돌려 막기를 하는 동안 종편, 케이블, 유튜브에서 새로운 흥행작들이 나왔다. 예컨대 웹예능 <문명특급>은 대형 방송국의 저예산 실험 프로젝트로 출발했다가 Z세대의 슈퍼스타 재재를 탄생시켰다. 케이팝 쇼 프로그램을 단독 진행하는 여성 MC란 기존 방송국의 마인드로는 절대 불가능한 아이디어였다.

천재 기획자 송은이가 남성 중심 방송계에서 튕겨 나와 만든 프로젝트들(팟캐스트 <비밀보장>, 유튜브 <비보티비>, 셀럽파이브), 김민경이 각종 체육에 도전하는 <오늘부터 운동뚱>(코미디TV), 전문 방송인 없이 여성 운동선수들만 기용한 <노는 언니>(E채널)는 성별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며 돌풍을 일으켰다.

종편에서는 2019년 JTBC의 <캠핑클럽>, tvN의 <삼시세끼 산촌 편>이 큰 호응을 얻었다. 여자 연예인이 모이면 시기, 질투, 내숭이 넘칠 거라는 편견과 달리 분업, 배려, 존중하는 진짜 여성 커뮤니티의 특성이 조망됐고, 시청자들은 ‘힐링’을 경험했다.

이처럼 성공 사례가 누적되고 시청자들의 요구가 확인되면서 여성 예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게다가 타인의 크고 작은 허물을 물어뜯는 게 온 국민의 유흥이 된 ‘정의의 시대’에 사건·사고 많은 남자 연예인 위주로 방송을 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여성 예능의 확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야 TV를 켤 맛이 난다. - 글 이숙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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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tvN <마인>
낙인찍힌 여성들이 각자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는 내용. 남편의 혼외자를 키우는 희수의 인생에 벌어지는 균열, 미혼모인 자경의 무모한 욕망과 성장, 레즈비언이지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길 택한 서현의 아름다운 멜로를 볼 수 있다. 진부하게 다뤄질 수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재해석했다.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그간 커리어 우먼 캐릭터는 천편일률적이었다. 매서운 화장을 하고 슈트를 입었으며, 일에서만큼은 냉정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은 여린 스타일. 하지만 <검블유>는 달랐다. 일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에 집중했고, 세 여성의 끈끈한 우정을 통해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줬다.

JTBC <SKY 캐슬>
상위 1% 재벌가의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여성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모습을 긴장감 있게 그렸다. 무엇보다 그동안 소모적 역할에 국한됐던 중년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드라마의 중심이 된 김서형, 염정아,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는 모두 입을 모아 “40대 여배우가 설 자리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능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들이 춤으로 실제 싸움을 방불케 하는 대결을 펼친다. 흔히 여성 서바이벌 예능이라면 떠올릴 법한 질투, 시기,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대결 구도는 없다. 춤으로 승부를 벌이는 댄서들의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준다.

E채널 <노는 언니>
골프 박세리, 펜싱 남현희, 피겨 곽민정 등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평생 운동 훈련을 하느라 논 적도 없고 놀 줄도 몰랐던 선수들이 서서히 ‘노는 맛’에 빠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여성 예능에서 외모 중심이 아닌 스토리가 중심이 된다는 것에서 새로움이 느껴진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미녀 혹은 그렇지 않은 캐릭터로 나뉘어 소모되지 않고, 축구에 도전하는 여성 방송인에 포커스를 맞춘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축구를 취미로 갖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즌 1을 마무리했다.
 

영화

<69세>
20대 남성이 69세 여성을 성폭행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노인의 피해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좌절, 딜레마를 통해 여성–장년, 나아가 약자가 감당해야 할 편견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임선애 감독은 “노인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바라보는 편견과 싸우고 싶었다”고 밝혔다.

<빛나는 순간>
제주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 분)과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 분)의 사랑 이야기. 노년 여성은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은연중에 깔려 있던 편견에 맞선다. 노년에 찾아온 사랑에 대한 당혹감과 애틋함을 그리는 50년 차 대배우 고두심의 섬세한 연기가 관전 포인트다.

<82년생 김지영>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이퍼리얼리즘 영화. 우리 시대 보통 여성들이 겪었음직한 불평등과 부조리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우리 사회의 너무 오래된 문제여서 일상이 돼버린,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를 지적해 문제의식을 이끌어낸다.
 

웹툰

  • 웹툰 <며느라기>

    ‘시월드’에서 인정받는 착한 며느리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가의 대소사 준비를 마다하지 않던 ‘민사린’이 며느리이기에 요구받는 과도한 헌신에 의문을 품는 과정을 그린다. 대한민국 며느리의 현실적 고민과 분노를 반영했다. 

  • 웹툰 <썅년의 미학>

    가부장적 시각을 가진 남자의 욕망에 순순히 수긍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여성을 ‘썅년’으로 정의한 작가는 이기적인 썅년이 돼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외친다. 여성 혐오와 관련된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상황을 그리며, 당시 느꼈던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담담하고 조곤조곤하게 귀에 꽂히는 반응으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 에세이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

    극한 고부 갈등을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가 서서히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시대의 기혼 여성이라면 경험했을 법한 일들과 그로 인해 느꼈던 생각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 에세이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기혼 여성이 가부장제를 탈피하기 위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들을 되돌아볼 계기를 제공하고, 기혼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이슈를 다루며 곧 페미니즘을 깨닫게 한다.

  • 소설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

    1세대 페미니즘 작가로 통하는 이경자 작가의 소설. 여자를 남자의 부속처럼 여기는 가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소설 출간 후 30년 동안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박현구
사진
일요신문, 시사저널, 연합뉴스, 스플래쉬 뉴스, 게티이미지뱅크, CJ ENM·JTBC· Mnet·E채널 제공, 재재·셀럽파이브 인스타그램, 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 컷, 유튜브 채널 ·이이효재 온라인 추모 홈페이지 화면 캡처, 각 도서·웹툰
2021년 10월호
2021년 10월호
에디터
김지은, 박현구
사진
일요신문, 시사저널, 연합뉴스, 스플래쉬 뉴스, 게티이미지뱅크, CJ ENM·JTBC· Mnet·E채널 제공, 재재·셀럽파이브 인스타그램, 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 컷, 유튜브 채널 ·이이효재 온라인 추모 홈페이지 화면 캡처, 각 도서·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