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등은 이미 접종 시작
2020년 12월 8일,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90살 여성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주인공은 마거릿 키넌 씨. 그는 영국 코번트리의 한 대학병원에서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은 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첫 번째 사람이 됐다는 게 너무나 영광스럽다. 최고의 생일 선물을 앞당겨 받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가 80살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전 세계 정부가 하나둘 코로나19 대응에 나서고 있다. AP통신,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12월 8일부터 영국 전역의 80살 이상 노인 등을 대상으로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스푸트니크V 접종을 시작했지만, 전 세계가 함께 맞는 대규모 백신을 국가 차원에서 접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은 이를 위해 잉글랜드 지역에 50개 거점 병원을 지정하고, 벨기에에서 생산된 화이자 백신 80만 도즈, 40만 명분의 백신을 각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2020년 12월 8일 오전 6시 31분(현지 시각), 세계 1호 주인공인 마거릿 키넌 씨를 시작으로 전 국민 접종에 나섰다. 우선 접종 대상은 요양원에 거주 중인 노인이다. 부작용에 대비해 일정 기간 병원에 머물러야 하고, 3주 뒤에 2차 접종을 해야 한다. 접종 2순위는 의료진과 80대 이상 노인인데, 올해 94살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99살인 그의 남편 필립공도 접종할 계획이다. 백신에 대한 일각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한 방책이다.
미국 역시 2020년 안에 2,000만 명을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백신 접종을 12월 14일(현지시간)부터 시작했다. 영국과 달리 백신 첫 접종자는 뉴욕 병원에서 근무하는 흑인 여성 간호사 샌드라 린지였다. 그녀는 접종을 마친 뒤 "의료진으로서, 백신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모든 사람이 백신을 맞기를 권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화이자가 출하한 백신 290만 회분은 12월 16일까지 뉴욕,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전국 636곳에 배달해 접종을 본격화하고 있다.
캐나다도 같은 날인 14일 간호사 2명을 포함해 요양원 근무자 5명을 상대로 첫 번째 백신 접종을 본격화하는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반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2020년 9월 국무회의에서 3,000만 명분의 백신을 우선 도입하겠다고 계획한 바 있는데, 최근 이보다 1,400만 명을 더 접종할 수 있는 백신 4,400만 명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시점은 2021년 초로, 늦어도 3월 전엔 도입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는 노인, 집단 시설 거주자, 만성질환자 등 코로나19 취약계층과 의료 등 사회 필수 서비스 인력 등 약 3,600만 명을 우선 접종 권장 대상자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4,400만 명분 중에서 1,000만 명분은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확보했는데, 이를 위한 선급금도 지급한 상황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의료 국제기구들이 백신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 만든 프로젝트이다. 나머지 3,400만 명분은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계약으로 선구매 혹은 구속력 있는 구매 약관을 체결한 단계라고 정부는 덧붙였다.
늦어도 3월 전에는 도입
백신마다 효과나 접종 방법은 다르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사 개발 백신의 경우 예방 효과가 최종 95%에 달한다. 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승인된 백신이기도 한데, 영하 70℃ 이하에서 운송해야 하고 영상 2~8℃에서 최대 5일간 보관이 가능한 점 등 보관과 이동이 까다로운 게 단점이다. 가격도 2만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미국 모더나사가 개발한 백신은 중증 환자의 경우 100%, 최종 94.1%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영하 20℃에서 6개월, 영상 2~8℃에서 한 달 가까이 유지 보관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가격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사 개발 백신보다 약간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가장 많이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가격이 저렴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6,000원 미만인데, 예방 효과는 70~90% 수준으로 확인됐다. 2회 투약할 경우 최대 90%의 예방 효과가 있는데, 영상 2~8℃ 일반 냉장고에서도 최소 6개월가량 보관 가능한 것 역시 장점이다.
정부는 "최종 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제품별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드존슨-얀센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화이자와 모더나는 상대적으로 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스푸트니크사V나 미국 노바백스, 그 외 국내 제약사 등 후발 주자의 백신은 아직 선구매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각 백신의 개발 동향을 주시하다가 필요할 경우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다. '늦은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이 2020년 4월부터 백신 관련 검토를 시작한 것보다 늦은, 6월에서야 우리 정부는 백신 도입 특별전담팀을 꾸렸다. 그러다 보니 이미 접종을 시작한 미국·영국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수준의 계약 진행 단계다.
우리 정부와 선구매에 합의한 제약사는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의 화이자·존슨앤존슨-얀센·모더나 등 4개사다. 2회씩 접종해야 하는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모더나에서 2,000만 회분씩, 얀센에선 400만 회분 등을 확보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와는 이미 계약을 완료했고, 화이자·존슨앤드존슨-얀센(구매 확정서)과 모더나(공급 확약서)와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통해 구매 물량을 확정했으며 2020년 12월 중 정식 계약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게다가 먼저 해당 제약사와 접촉한 국가들의 계약이 우선이라 우리나라가 언제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다. 당장 미국은 모더나와 선구매 계약 당시 조항에 넣은 추가 요청 권리를 최근 행사해 1억 회분을 더 요청했다. 한국이 모더나를 통해 확보했다고 밝힌 2,000만 회(1,000만 명) 분량은 아직 도입 시기 등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선구매 계약을 확정한 다른 국가들에 공급 시기가 밀릴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여전한 우려
진짜 문제는 백신의 '안정성 여부'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급히 만든 백신이다 보니 안정성, 효과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아예 해외 제약사들은 부작용에 대비, 책임을 제약사에서 지지 않는 부작용 면책권도 요구하고 있다. 백신을 개발 중인 가운데 제약사들을 향한 전 세계 정부의 '구매 요청'이 줄을 잇고 있어 부작용 면책권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정부 역시 백신 개발사의 부작용 면책권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양동교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대부분의 나라가 면책 조항이 담긴 표준계약서로 선구매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면책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 엄수 약속에 따라 공개하기 힘들다"고 시사했다. 국내 집단감염 완료 시점을 2021년 하반기로 내다보고 있는 우리 정부는 부작용에 대해 제약사가 아닌, 국가 차원 배상안을 검토 중이다.
초저온을 유지해야 하는 유통 과정도 큰 숙제다. 영국의 경우 벨기에에서 생산한 화이자 백신 운반을 위해 영하 70℃ 보관이 가능한 특수 상자를 동원했다. 또 영하 70℃ 이하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접종 가능 병원을 제한했다. 우리도 화이자 백신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영하 70〜80℃의 초저온 상태로 보관하는 비행기 내 시설 등이 필요하다. 제품별로 유통 조건과 유효기간, 접종 횟수 등이 달라 접종 계획도 사전에 철저히 수립해야 한다.
정부 역시 백신에 따라 다르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 안정성을 우려,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의 화이자·존슨앤드존슨-얀센·모더나 등 4개 제약사를 통해 확보했다고 밝혔다. 실제 백신들은 안전성 검증을 거쳤지만 통상적인 백신 안전성 검증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단축 검증을 한 것이기에 부작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소수의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실제 접종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예측하기가 다소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나를 많이 사는 것보다 분산시킨 뒤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전문가 대부분의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소아와 청소년은 접종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안전성·유효성 근거가 아직 불충분하지만 임상 결과를 지켜보면서 접종 전략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안정성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백신 접종은 본인 동의가 원칙이고, 동의하더라도 특정 제품을 지정해 접종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