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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nd ANNIVERSARY SPECIAL 우먼센스 돌아보기

<우먼센스>에 담긴 이정재와 정우성의 20대 이야기

오랜만에 나란히 스크린에 복귀한 정우성과 이정재.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들의 스크린 복귀를 기념하며 95년도 <우먼센스>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들의 남달랐던 20대 시절을 공개한다.

On August 13, 2020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의 길을 택한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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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한 지 1년 만에 ‘모래시계’로 입지를 단단하게 굳혔던 이정재

“저희 또래는 남들과 다르기를 원합니다. 튀기를 원하죠. 그래서 제가 연예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짝스타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 대해 신세대 스타니, X세대 스타니 하는 말들이 듣기 싫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런 분류보다도 더 튀고 싶었거든요. 다르고 싶었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 최종 회가 방영된 후, <우먼센스>와 만났던 이정재의 말이다. 당시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었던 그는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열린 음악전문 케이블TV 뮤직네트워크 개국 축하쇼에 참석하여 많은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가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다가 CF모델로 선회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심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개방적인 성격이지만 가정교육을 엄하게 했던 부모님은 그가 ‘잠깐 스타’가 될 것을 우려했다고. 그래서 그는 ‘잠깐 스타’가 되지 않기 위해 ‘모레시계’에 더욱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한창 뜨고 있는 같은 나이 또래의 연기자들에게 지기도 싫었고 ‘신세대 스타의 가벼움’의 표본이 되기도 싫었다고.

“지금까지 그렇게 몰두해 본 일이 없을 겁니다. 연기 연습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대본을 읽고 또 읽어가며 제 배역만큼은 열심히 소화하려고 했습니다.”

작가가 추천해준 ‘영웅본색’, ‘열혈남아’, ‘첩혈쌍웅’ 등의 비디오테이프를 모니터하면서 배역의 분위기를 연구했고 검도 도장에 나가 한 달여 동안 무예를 연마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액션 연기를 실감 나게 하기 위해서 고현정이 몰고 가는 자동차로 뛰어드는 스턴트 연기를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내기도 했고 한겨울 차가운 바람 속에서 얼굴 근육이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도록 철판에 얼굴을 대고 누워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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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의 위기를 지나 단숨에 스타로 급부상한 정우성

“인기를 실감하고 있죠. 거리를 돌아다닐 때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꽂히거나 주위 사람들이 축하한다며 인사를 해올 때 ‘내가 스타가 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재처럼 정우성 역시 배우가 되기까지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한다. 정우성은 배우의 꿈을 키우며 고교 1년을 다니고 중퇴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고 일찍이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던 터라 배우의 길에 학교 졸업장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그가 처음 학교를 중퇴한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말렸다. ‘너는 남자이니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학교는 다녀라’고 그를 달랬다고 한다. 하지만 정우성은 오히려 부모를 설득했다. 존경하는 영화배우 ‘일급 살인’의 주인공 ‘크리스천 슈레이터’ 역시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지만 훌륭한 배우가 된 것처럼 자신도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얻었다. 부모님을 설득해 기어이 학교를 중단한 뒤 햄버거집과 옷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의 꿈을 키웠다. 그 결과 학교를 그만둔 지 1년만인 90년대 모델 센터에서 실시한 전속모델선발대회에서 당선되었고, 이듬해 중저가 의류 E랜드 모델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는 모델로 활동하며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틈틈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거기서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거기서 지금의 매니저를 만나 본격적으로 매니지먼트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영화 ‘구미호’에서 고소영의 상대역으로 발탁되면서 하루아침 무명의 설움을 씻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1995년 당시 청춘스타 이정재 정우성의 이상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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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도 안 해본 순정파였던 이정재

아직 나이가 어렸던 이정재는 당시 온몸을 던져 지켜주고 싶은 여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마음이 흔들렸던 경험은 있었지만, 사랑을 경험해보지는 못했다는 게 그의 의견.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가슴 아픈 사랑을 연기하며 확실히 ‘사랑’과 ‘좋아함’을 구별하게 된 그는 이제 비로소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분위기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하면서도 결혼은 아주 멀었다고 생각한다는 20대의 이정재. ‘총각 때 실컷 놀고 싶다’는 이유로 결혼은 이왕이면 아주 늦게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그 소망을 지금까지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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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가장 중요하다는 정우성

당시 20대였던 정우성은 여자를 볼 때 느낌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마음씨가 좋고 많이 챙겨주는 여자가 좋다고.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다면 흔쾌히 밝힐 수 있다고 말하며 신세대 특유의 당당함을 어필하기도 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매사에 똑 부러지는 여성보다는 다소곳하고 귀여운 여자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연애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결혼만큼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그. 1990년대 당시의 정우성은 운명론자였나 보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부터 남달랐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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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하겠다는 이정재

“저는 숀코넬리처럼 멋있게 나이 들고 싶어요. 왜 나이 들수록 멋이 나는 사람 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부터가 자기 얼굴을 만들어가는 때라고 봐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책도 많이 읽고 정신 수양도 닦아야겠지요.”

당시 틈틈이 책을 읽고 있다는 그는 한창 빠져있는 베르나르베르베르에 ‘개미’라는 책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젊은이답게 할 수 있는 일에 도전도 서슴지 않았던 이정재는 당시 가수로도 변신한 바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비에 흠뻑 젖는 기분으로 분출하고 싶어서였다고. ‘이정재’라는 이름 석 자를 걸며 출판된 첫 앨범에서 그가 부른 노래의 제목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다. 이 노래는 그가 입대 직전인 지난 연말에 봤던 영화 ‘젊은 남자’의 타이틀곡인데 중저음이 매력적인 이정재의 목소리가 더해져 비장미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뿐만 아니라 연기와 영어 회화도 공부하며 자신을 20대를 풍성하게 가꾸어 나갔던 그. 당시 ‘모래시계’ 다음 작품으로는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하고 싶고, ‘나인 하프 워크’나 ‘데미지’류의 아주 감각적인 베드신을 해보고 싶다는 디테일한 열정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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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일’

그는 당시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가 마무리되면 방송 드라마는 당분간 그만 출연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영화 출연을 더 이어나가고 싶다고. ‘게임의 법칙’을 만든 장현수 감독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를 정우성의 이미지에 맞게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한 작품(1996년 작 영화 본투킬)이 될 것이라 기대감을 밝히기도 했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최종 꿈은 의외로 배우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당장 극장에서 상영하는 상업 영화는 아닐지라도 16mm 영화를 만들어 볼 예정이라 말했다.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과 함께 만들 계획이라고. ‘배우로 가는 길에서 일단 배우의 역할을 배운다면, 영화감독의 역량도 자연스럽게 흡입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당시 그의 의견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정우성은 다수의 영화에서 감독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내고 있는 것을 보니, 그 꿈을 상당 부분 이룬 듯하다.

CREDIT INFO
에디터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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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2020년 08월호
2020년 08월호
에디터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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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