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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주역, 흥행 배우 이병헌

연기 하나로 이 바닥을 평정한 국보급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On February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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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병헌이다. 그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 이후 스크린에 복귀했다. 영화 <백두산>은 제작비 260억원의 재난 블록버스터로, 현재 누적 관객수 800만을 돌파했다.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벙헌은 하정우와 공동 주연을 맡았다. 극 중 이병헌은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으로 분해, 속내를 읽기 힘든 복잡한 심리의 캐릭터를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소화해 관객을 압도한다.

이병헌은 <백두산>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도 개봉한 상태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병헌은 대통령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주연배우로서 <백두산>을 본 소감은 어땠나요?

사실 다른 영화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데 <백두산>은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예상이 안 됐어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솔직히 놀랐어요. 규모감도 엄청났고요. 이런 장면이 있었나? 이런 배경이 있었나? 싶은 장면이 많았어요. 분명 촬영할 때는 허허벌판을 달렸는데 그 배경이 백두산으로 입혀지니 새롭더라고요. 뭐랄까, 관객의 입장에서 봤다고 할까요. 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시사회를 하면 당시 내가 했던 연기, 대사, 감정이 떠올라 온전히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 어려운데, 이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즐길 수 있었어요. 뒤풀이 때 우리나라 CG가 이렇게 발달했냐며 자찬하는 분위기도 있었죠.

하정우 씨와 처음 호흡을 맞췄어요. 어땠나요?
사석에서 우연히 만나면 "같이 작품 한번 하면 좋겠다"는 말을 나누곤 했어요. 서로 아예 모르는 사이가 아닌지라 이 친구의 매력을 익히 알고 있었죠. 평상시에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데 촬영하면서 순발력과 유머가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전도연 씨가 카메오로 출연했는데요.
이전에 두세 편 함께 작품을 해봤기 때문에 익숙한 배우예요. 굳이 리허설을 여러 번 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익숙해질 필요가 없죠. 워낙 베테랑이라 이번에도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이 영화는 두 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을 했어요. 배우 입장에서 장단점이 뭘까요?
촬영이 끝난 뒤 들어보니 격일제로 나누어 연출했다고 해요. 현장에서는 모니터 앞에 항상 두 분이 함께 계셔서 몰랐거든요.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상의를 할 때 두 분이 다 계신 자리에서 말하는 게 편해요.(웃음)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말해야 하잖아요. 사실 두 분이 워낙 조용하고 선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라 선장이 둘이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물론 모든 장면을 두 분 모두 만족해야 하니 몇 번 더 찍는 정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연이어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을 본 소감은 어떤가요?
굉장한 웰메이드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후반 작업 시간을 길게 가졌는데 확실히 영화가 잘 다듬어졌어요. 사실 배우는 영화를 찍고 나면 객관성을 잃게 돼요. 영화가 어떠하다고 이야기하기가 참 힘든데, 분명한 건 영화가 완성도 있게 잘 나왔고 배우들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는 겁니다.

절제되고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였어요.
답답하리만큼 계속 누르고 자제하려는 연기였어요. 오히려 그게 더 어렵죠. 제 역할이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더해 연기하는 것을 경계하려고 했어요. 근현대사의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더라고요. 여전히 미스터리한 것으로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 우리 영화가 정답처럼 규정지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심리 상태 표현을 위해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해요.
다큐멘터리 같은 실제 영상들, 여기저기서 들은 증언을 토대로 그 당시 인물의 감정 상태와 심리를 최대한 닮으려고 애를 썼어요. 극단적인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배우가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캐틱터의 상황 속 감정만 가지고 있어도 감정이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기했어요. 배우들이 느끼는 마술 같은 부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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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면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적어요. 예전엔 넘치는 자신감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고집이 약해졌다고 할까요. 남들이 저를 더욱 객관적으로 봐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누군가 제 연기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하면 거절하지 않고 시도하는 편이에요.

현장에서 집중력이 좋은 배우라고 들었어요.
집중하려고 발버둥 치는 거죠. 그렇다고 저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저 그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죠. 우리 작업이 그래요. 촬영 중간에 식사라도 하면 감정 연결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모니터를 보거나 머릿속에선 계속 그 장면을 생각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 장면과 연결이 안 돼 연기가 튈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하정우 씨가 '악마 같은 배우'라고 했나 봅니다.(웃음)
연기 기계, 악마, 뭐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칭찬이겠죠?(웃음)

스스로 꼽는 배우로서의 강점은 뭔가요.
신인 때는 조명감독들이 제 얼굴을 까다로워했어요. 특이한 얼굴이라고 짜증을 내는 감독도 있었고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이제는 얼굴 각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낸다고 하더라고요. 얼굴 골격 덕분인데, 그런 점은 배우로서 고맙죠.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입니다. 그럼에도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요?
결과물이 잘 나온다고 해도 고민을 계속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에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깐 사는 거잖아요. 그 인생을 제가 어떻게 알고, 또 그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고, 연기에 공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죠. 사실 저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적어요. 예전엔 넘치는 자신감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고집이 약해졌다고 할까요. 오히려 남들이 저를 더욱 객관적으로 봐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누군가 제 연기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하면 거절하지 않고 시도하는 편이에요.

배우로서 설렘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대부분의 배우가 그럴 거예요. 진심이 전해진 연기를 했고 스스로 만족스러우면 그 기분이 그날의 감정을 지배해버리죠. 그때 설렙니다. 반대로 감정이 도저히 안 나오고 결과적으로 흉내만 낸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그날 하루 기분이 다운돼요. 그렇게 연기가 하루를 지배해버리죠.

연이어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하고,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히어>에도 출연해요. 지치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저도 지쳐요.(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으면 힘들어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쉴 틈 없이 작업하게 됩니다.

올해는 한국 영화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한마디 해주세요.
부정적으로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여전히 한국 영화의 힘을 긍정적으로 봐요. 오래전부터 할리우드 스태프에게 한국 영화가 지닌 특별함에 대해 자주 들었어요. 그들이 그래요. 대부분의 영화는 다음 장면, 혹은 결말이 예상 가능한데, 한국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요. '예측 불허'가 한국 영화의 장점이라는 거죠. 최근에 미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 영화의 파급력이 외국 영화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만 봐도 그래요. 현지에서도 느꼈지만 그 파워가 대단했어요.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없나요?
스케줄을 조율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이상적인 배우 활동이라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 작품씩 하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아요. 해외 작품을 기다리다가 국내 작품을 잡으면 며칠 뒤에 미국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는 식이죠. 운이겠거니 해요. 물론 일본이나 중국의 몇몇 배우들은 아예 할리우드에 가서 지내는 경우도 있어요. 맘먹고 자국의 영화를 스톱하고 할리우드에서 계속 미팅을 하는 식이죠.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는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 영화도 그만큼 제게 중요하고, 또한 한국 영화의 파급력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한국은 영화 강대국이에요. 그 파급력이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아요. 게다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가 한국어로 하는 감정 표현이잖아요. 서툰 외국 말로 외국 문화까지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가장 자신 있는 언어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죠.

하는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배우로서 이병헌은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데, 혹시 인간 이병헌은 고민이 있나요?
모든 사람이 비슷하겠지만 거창한 고민보다는 저도 하루하루 사사로운 고민을 하며 지내요. 또한 사사로운 것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요. 요즘요? 술을 자주 마시는 것 같은데 오늘은 마시지 말아볼까, 뭐 그런 고민이죠. 저 역시 별다를 게 없이 지냅니다.

내년이 데뷔 30주년이 되는 해예요.
나이를 생각하며 살지 않다 보니 숫자를 말하면 실감이 나지 않아요. 분명한 건,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기에 제가 있다는 겁니다. 드라마 <내일은 사랑> 때부터 편지와 이메일을 주시는 팬도 많아요.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천명의 나이에 SNS를 시작했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회사에) 떠밀려서 시작했어요. 이왕 시작한 거 재미있게 하자 싶었죠. 제 피드를 보며 피식 웃으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웃음)

진부한 질문이지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어떤 배우라…. 기대되는 배우이고 싶어요.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기대심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게 배우로서 제 바람입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BH엔터테인먼트
2020년 02월호
2020년 02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BH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