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ISSUE

ISSUE

그들은 왜 니트족이 됐나

‘3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 5명 중 1명은 일도, 교육도 보이콧하고 있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On June 12, 2019

3 / 10
/upload/woman/article/201906/thumb/42135-371539-sample.jpg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선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고, 연애·결혼·출산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된 청년들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하는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느니 차라리 탈노동을 선언하고 '니트족'이 되는 것을 택했다.

'니트(NEET)'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첫 글자를 딴 말로 교육받지 않거나 취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취업에 대한 의욕이 없기 때문에 일할 의지는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과는 다르다. 1990년대 불황을 겪은 영국 등 유럽에서 나타나 일본으로 확산됐는데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내 청년 실업자 중 일을 '쉰' 인구는 30만 명을 돌파했다. 30만 명이 니트족 대열에 합류했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년 니트족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지난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사회 2019'에 따르면 2017년 OECD 36개국의 15~29세 니트족 비율 평균 수치는 13.4%다. 한국은 18.4%로 7위에 올랐는데 이는 우리와 경제구조가 비슷한 독일(9.3%), 일본(9.8%)보다 2배나 높은 수치다.

왜 직장에 머물지 못하는가?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니트족을 '부모의 등골을 뽑아가며 놀고먹는 자식'의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니트족 당사자들은 현실에 안주해 부모에게 기대 사는 삶을 유지하고 싶어 니트를 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부, 대입, 취업, 결혼, 출산 등 미션처럼 주어진 일을 하면서 번아웃된 상태로 잠시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이스에 잠시 제동을 걸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와 같은 생각을 한 뒤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배경에는 '질 좋은 일자리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대학 교육을 마친 고학력 니트의 비율이 42.5%로 가장 높다('한국의 청년 니트 특징과 경제적 비용'(2015),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이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삶이 나아질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단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이충한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기획부장은 현재 청년들의 상황을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 비유했다. 고성장 시대엔 누구나 계속 걸으면 풍요와 행복이 기다리는 남단으로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 중간이 툭 끊겼다. 부모로부터 헬리콥터와 보트를 제공받지 못한 대다수의 청년은 물살에 휩쓸릴까 봐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건널 수 없는 다리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끊어진 다리가 다시 이어져야 청년들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니트족을 유별난 성향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실업자, 경력 단절 여성, 취업 준비생이라는 단어처럼 일시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며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왜 취직을 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직장에 머물지 못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현 정부는 청년 정책의 일환으로 구직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청년수당과 같은 정책을 내놨으나 이는 도리어 숨은 실업자를 늘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정부는 청년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국회는 청년기본법을 추진하고, 국무총리실은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신설해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청년 정책을 총괄하고, 청와대는 청년정책관실을 신설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청년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청년 정책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앞서 이를 경험한 유럽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청년의 절반이 실업 상태에 놓였던 독일은 유럽연합의 청년보장제도(25세 이하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실직할 경우 4개월 이내에 교육과 노동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확대한 정책으로 고용률을 증가세로 전환시켰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양질의 능력을 지니도록 키웠고, 빵집·정육점·자동차 정비 등 특정 산업은 높은 기술 및 기능 자격증 취득자인 마이스터(Meister)만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일과 가사를 동등하게 분담하게 하기 위해 보육 시설을 확충했다.

스위스에서는 부가가치세 및 행정 처리를 지원하는 등 간접적인 지원 정책으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진흥시켜 일자리를 늘렸다. 동시에 청년에게 이론과 실습이 혼합된 교육을 실시해, 그들이 중소기업으로 향할 수 있게 도왔다.


MINI INTERVIEW
"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는 시기"

인스타그램 '니트일기(@nicetoneet)'에 웹툰을 게재하며 41만 명의 팔로어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니트족' 김혜민 작가의 이야기.

Q 몇 년 차 니트인가요?
2년을 가득 채웠어요. 직장 생활을 하다 부모님에게 "2년의 시간을 주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퇴사했어요.

Q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직장인의 생활이 맞지 않았어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괴로웠고 조직의 체계나 위계질서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40~50대 상사가 제게 "우리 딸이랑 비슷한 나이야"라는데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죠. 그렇게 상사의 눈치를 보는 순간들이 힘들었어요. 처음엔 제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니트족에 대해 알게 됐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Q 다른 회사에 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전공 분야가 적성에 맞지 않았는데 등을 떠밀리듯이 취업했거든요. 주변에서는 저 자신을 알아갈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가끔씩 주변에 고민을 토로하면 "다들 그렇게 하는데 네가 버티지 못하는 거야"라는 답변이 돌아왔고요. 누구도 제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공감해주지 않았죠.

Q 니트 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변했나요?
나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저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많은 돈을 벌 때보다 수입이 적더라도 나의 속도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해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게 더 좋고요. 그동안 제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지 않았더군요. 오롯이 제게 집중하고 나니 제가 다양한 감정을 가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제 약속한 시간이 다 돼 경제활동을 시작하려고 해요. 그동안 알게 된 제 성향에 맞는 일을 찾을 거예요.

Q '니트일기'를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니트족을 알게 되고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딱 저의 이야기였어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받았죠. 그래서 저의 이야기를 통해 번아웃된 사람들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Q '니트일기'가 작가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위안을 받아요. 만화를 올릴 때마다 다양한 반응이 오는데 대부분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라는 반응이에요. 그분들이 그동안 저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어 마음을 숨기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전까진 "쉬지 않고 일했어.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어"라며 열심히 살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Q 아직까지 '니트족'은 부모님의 경제력에 기대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니트족'을 현재에 안주하는 한심한 사람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 모두 생김새가 다르듯이 삶의 속도도 다를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니까 나만의 속도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Q 니트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조언해주세요.
웹툰을 보는 많은 분이 제 삶을 궁금해해요. 나이, 학벌, 다녔던 회사의 규모, 부모님의 재력 등을 물으며 자신의 삶과 비교하더군요. 저를 기준으로 삼고 '30대인데 니트족이 돼도 괜찮을까?'라며 고민하는 거죠. 그런 분들에게 '당신의 삶도 옳은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니까 타인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결정하면 좋겠어요.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도움말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이충한, 서울연구원)
2019년 06월호
2019년 06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도움말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이충한, 서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