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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의 내려놓기

<미스 함무라비>가 종영한 다음 날 배우 이태성을 만났다. 그는 극 중 캐릭터 ‘민용준’을 벗고 다시 이태성이 돼 있었다.

On August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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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자라, 팬츠 홀리넘버세븐, 스니커즈 자라.

셔츠 자라, 팬츠 홀리넘버세븐, 스니커즈 자라.


<황금빛 내 인생>(이하 <황금빛>)에서 N포 세대를 대변하는 캐릭터 ‘서지태’로 열연했던 이태성은 드라마 종영 후 한 달 만에 <미스 함무라비>(이하 <함무라비>)의 재벌 후계자 ‘민용준’으로 돌아왔다. 온라인에서는 지금껏 선한 역을 맡아온 그의 악역 변신이 성공적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9개월간 이어진 <황금빛>을 마친 후 쉬지 않고 바로 다음 작품을 선택했던 그는 아직 부족하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일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이태성을 폭염이 계속된 어느날 만났다.
 

일 년간의 연기 마라톤

그를 만난 날은 JTBC 드라마 <함무라비>의 종영 다음 날이었다. 이태성은 이미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여행까지 다녀온 후였다. 그래서인지 어제까지만 해도 TV 속에서 몸에 딱 맞는 슈트, 세팅해 각 잡힌 헤어스타일이었던 그가 밝은 컬러의 짧은 헤어에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났을 땐 싫지 않은 이질감이 들었다. 이태성의 얼굴에선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의 후련함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황금빛>이 종영한 후 바로 <함무라비>에 투입됐어요. 두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일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죠.”

<함무라비>는 사전 제작 드라마로, 이태성은 이미 다른 출연자들의 촬영이 꽤 진행된 후 뒤늦게 자신의 분량을 몰아서 촬영했었다.

“정말 정신 없었어요. <황금빛> 같은 경우 방영 전날까지도 촬영을 했었거든요. <함무라비>는 다 찍어놓고 방영을 시작했으니 어제 종영했다고 해도 제겐 이미 먼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함무라비>는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출신의 서울동부지방법원 문유석 부장판사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드라마의 극본도 문 판사가 집필했다. 고아라가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는 이상주의 열혈 초임 판사 ‘박차오름’ 역을, ‘인피니트’ 멤버 김명수가 원리원칙이 최우선인 초엘리트 판사 ‘임바른’ 역을 맡아 혈기 넘치는 젊은 판사들의 정의사회 구현을 이야기 했다. 극 중에서 이태성은 ‘박차오름’과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NJ그룹 후계자 ‘민용준’을 연기했다. 드라마 초반 ‘박차오름’을 향한 사랑 고백으로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던 그는 차츰 본성을 드러내며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전작 캐릭터와 극과 극의 배역이었어요. 그래서 빡빡한 일정임에도 <함무라비>에 꼭 출연하고 싶었죠. 시청자분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황금빛>의 여운을 좀 덜어내고 싶었던 것도 같아요.”

<황금빛>에서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장남으로 N포 세대의 애환을 보여주었던 이태성이 <함무라비>에서 맡은 ‘민용준’은 이기적인 재벌의 본성을 보여주는 역할이었다.

“‘서지태’는 캐릭터 자체가 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일단 장남이고, 집안도 어려운 흙수저에 아버지까지 아픈, 슬픔이 가득한 그늘진 캐릭터였거든요. 연기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낄 정도였죠. 반면 ‘민용준’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 있는 인물이에요.”

<함무라비>는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방영 초반에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호연에도 다소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극 후반, ‘민용준’의 본성이 드러나고 극의 긴장감이 고조되며 시청률도 함께 상승했다. 이태성은 딱히 악한 캐릭터가 되기 위한 연기를 한 건 아니라고 했다.

“많은 분이 ‘민용준’을 악역이라고 말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 그는 악역이 아니에요. 오히려 인간적인 캐릭터죠. 만일 ‘민용준’의 시각에서 드라마가 그려졌다면 그는 그저 자신의 가족과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에요. 단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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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커버낫, 팬츠 이스트쿤스트, 스니커즈 페이유에, 반지 개인소장품.

제 휴식의 목적이 소모된 부분을 채우기 위함은 아니에요.
재정비를 하고 싶은 거죠. 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요.

나를 찾기 위한 내려놓기

<함무라비> 종영 후 바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태성은 <황금빛>이 끝나자마자 <함무라비>에 투입되는 바람에 괌으로의 포상 휴가에 함께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 때문인지 당분간은 쉬면서 여행을 다닐 예정이라고.

“지난 일 년간 촬영장을 오가며 같은 패턴의 삶을 살다 보니 시야가 닫히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여행도 그래서 갔던 거였어요. 여행이 시야를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잖아요.”

이태성이 휴식을 취하는 목적은 재정비다.

“작품을 오랜 시간 이어갔지만 소모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휴식의 목적이 소모된 부분을 채우기 위함은 아니에요. 재정비를 하고 싶은 거죠. 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요.”

어디로 여행을 떠날 거냐고 물으니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며, 즉흥적인 성격이라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떠날 거라고 했다.

스스로 즉흥적인 성격이라 말한 이태성은 그간 그가 드라마에서 주로 연기해 온 온화하고 듬직한 캐릭터와 조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낯을 가리고, 섬세해 보이는 그에게 실제 성격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배우가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를 지우는 거잖아요? 그래서 배우 생활을 계속하려면 오히려 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태성은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놓아둔다고 했다.

“전 작품이 끝나면 한동안 저를 놔두는 편이에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죠. 그러면 어느 순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면 ‘이게 실제 나인가?’ 생각하게 돼요. 그러다가도 다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 캐릭터에 몰입하면 ‘실제 내가 어떤 사람이었지?’ 하고 또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들이 작품을 할 때 캐릭터에 몰입한 나머지 일상에서도 작품 속 캐릭터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품과 실제를 분리해 촬영할 때만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사람이 있다. 이태성의 경우 전자에서 후자로 변화했다.

“20대 때는 촬영이 끝난 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도 작품을 할 때는 자면서 대본을 읊조릴 만큼 캐릭터에 몰입하지만 일상에 영향을 안 받게끔 캐릭터와 나를 분리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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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홀리넘버세븐, 티셔츠 자라, 스니커즈 엑셀시오르.

 

색으로 대신하는 언어

이태성은 잦은 부상으로 고3 때 야구를 접기 전까지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할 만큼 촉망받는 야구 선수였다. 야구를 그만둔 후 연극영화과에 도전하기 위해 찾은 연기 학원에서 야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오디션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고, 아이러니하게도 야구 선수 역할로 연기자로 데뷔하게 됐다.

“원래 연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야구를 그만둔 후 어쨌든 대학은 가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서울예술대학교 입시를 준비하게 된 거였죠. 실기를 준비하려고 연기 학원에 갔는데 <슈퍼스타 감사용>의 배우 오디션 공고가 붙어 있더라고요. 야구 선수 출신이라고 하니 바로 통과됐어요.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야구를 안했다면 배우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는 그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태성은 여전히 야구를 좋아한다. 다만 최근 몇 년간은 야구보다 골프에 더 빠져 있다고 한다.

“군대 전역 후 소속사 사장님이 골프를 추천해줬어요. 골프는 혼자서 자신과 싸워야 하는 멘탈 스포츠니 저에게 잘 맞을 거라고 했죠.”

그는 골프를 하는 행위 자체가 불교의 108배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연습할 때 골프공을 200~300개 정도 쳐요. 매번 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공은 항상 다른 모양으로 날아가죠.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공을 치다 보면 공과 저만 남게 돼요. 그럴 땐 ‘불교에서 108배를 하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 생각하죠.”

그는 골프 연습으로 땀을 쏟고 나면 뭔가 털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최근 이태성이 골프보다 더 빠진 것이 있는데, 바로 그림이다. 작품이 끝나고 다 털어내지 못한 캐릭터의 여운과 감정을 그림을 통해 배출하는 배우들이 있다. 하정우도 전시회를 열 만큼 독특한 그림 세계를 인정받았고,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도 수준급 캐리커처 실력으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일종의 심리치료 같은 역할을 해요. 저도 그래서 계속 그리게 되는 것 같고요.”

이태성은 주로 색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배우진 않았어요. 그저 제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거죠. 하정우 선배님도 그렇고, 배우들은 인물의 얼굴을 많이 그리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구체적인 어떤 형태보다 형상화되지 않는 감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요즘 이태성이 주로 그리는 소재는 별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너만 그릴 수 있는 주제를 찾아 계속 그려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걸 찾고 있는 단계예요. 요즘 가장 많이 그리는 소재를 꼽자면 별이에요.”

그는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완성하는 데 오래 걸렸어요. 꽤 큰 작품이에요. 작은 크기의 세밀화 같은 건 체질에 맞지 않아요.”

그의 그림은 거친 붓 터치에 과감한 컬러가 특징이다. 최근에 그린 그림은 강렬한 빨간색과 초록색이 중첩돼 있다. 한동안은 파란색만 사용한 적도 있다고. 파란색은 주로 우울함을 표현하는 색으로 쓰인다고 그에게 설명했다.

“<황금빛>을 촬영하고 있을 때 그린 거였어요. 답답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느낀 감정이 표출됐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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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은 요즘 신이 난다고 한다. 군 복무 중,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질까 봐 TV조차 보지 않았다던 그는 전역 후 3년 동안 공백 없이 지금껏 달려왔다.

“연기를 하면서 남자 배우는 30대부터 시작이라고, 30대 때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군대 제대 후 안 쉬고 계속해왔던 것 같아요. 바쁜 스케줄에 힘들어하다가도 군 생활 때 가졌던 연기에 대한 열망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요.”

선 굵은 외모가 남자다운 매력의 배우 이태성은 생각보다 섬세한 성격을 지녔고, 생각한 대로 터프했다.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개구지게’ 장난을 치다가도 카메라 셔터 소리에 금세 눈빛이 달라지는 그를 보며 천생 배우라고 말했다.

“그런가요? 야구할 때도 마운드에 혼자 서는 투수였어요. 어릴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일이었죠.”

34살, 이태성은 뜨거웠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김정선
스타일링
박정진
헤어
수안(에브뉴준오)
메이크업
현지(에브뉴준오)
2018년 08월호
2018년 08월호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김정선
스타일링
박정진
헤어
수안(에브뉴준오)
메이크업
현지(에브뉴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