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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후한 점수를 줘라!’ ‘남녀 비율 4:1로 뽑아라’ 명백한 성차별

하나·국민은행, 직원 채용 시 여성 차별

On May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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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찾은 청년들이 현장 면접을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찾은 청년들이 현장 면접을 보고 있다.


1. “남자 4명에 여자 1명꼴로 뽑아라.” KEB하나은행은 지난 2013년 하반기 공채에서 남녀 합격자 비율을 미리 4 대 1로 정했다. 명백한 차별 채용이다. 서류전형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고, 최종 합격자 남녀 비율은 무려 5.5 대 1이었다. 여성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한 셈이다.

2. “남자에게 점수 더 후하게 줘라.” KB국민은행은 2015년 상반기 채용 과정에서 남성 지원자 100여 명의 서류전형 점수를 비정상적으로 여성들에 비해 높게 매겼다. 특별한 청탁이 없었는데도 일부러 여성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남자 지원자의 점수를 올려줬다. 그동안 은행들이 얼마나 심하게 남녀 성차별 채용을 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예 채용 단계에서 여성을 떨어뜨리는 견고한 ‘유리천장’이 형성됐고, 이는 곧바로 여성 직원 인재 풀(pool) 부족을 초래해 여성 임원 배출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여성가족부 장관이 신임 금융감독원장을 찾아가 “금융권 성차별을 없애달라”고 쓴소리까지 쏟아냈다.
 

여가부 장관 “금융권 성차별 없애달라” 요청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4월 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김기식 금감원장에게 “최근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에서 발생한 여성 차별 채용비리를 두고 여성계는 경악하고 있다”면서 “금감원이 실태조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지도·감독해달라”고 요청했다.

정 장관은 “금융권은 관리자 비율 측면에서도 여성 비중이 유독 적다”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금융권 성차별 관행을 최대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금감원이 가진 권한’으로 범위를 제한하면서도 금융사 경영실태평가 때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여성 채용을 막고자 남녀 채용 비율을 미리 정해놓고 합격 점수를 달리하는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면서 “하나은행이나 국민은행 이외에 다른 은행도 성차별 문제가 있어 보이는 만큼 개선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권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은 현행 감독 규정상으로는 징계할 조항이 미비하다”면서 “앞으로 (금융사 대상으로) 경영진단평가를 할 때 고용 항목에서 젠더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겠다”고 답변했다.

이는 금감원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경영실태평가를 할 때 인사관리의 적정성 부분을 더 엄격하게 보겠다는 의미다. 인사관리 적정성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직원 채용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고 있는지를 보는 항목이 있다. 즉 성별이나 항목 등에 따른 차별 여부를 점검해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정 장관이 이어 “금융권 채용 단계별로 성비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하자 김 원장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협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직적으로 여성 지원자 탈락시켜

은행들의 여성 푸대접은 상상 이상으로 집요하고 조직적이었다. 금감원이 지난 4월 2일 발표한 2013년 하반기 하나은행 채용 특별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하나은행은 사전에 남자 80명, 여자 20명을 뽑기로 계획을 짰다. 당시 지원자는 남자 7,535명, 여자 5,895명이었다. 서류전형에서 남자 1,600명, 여자 399명을 통과시켜 남녀 비율을 4대 1로 맞췄다. 충실하게 미리 정한 비율을 지킨 것이다. 서울 지역 서류전형에서 여성 커트라인은 467점으로 남성 커트라인(419점)보다 48점이나 높았다. 남녀 차별이 없었다면 전체 서류전형 커트라인은 444점이고, 여성이 619명 더 서류전형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무자가 기록한 서류에서 최종 합격자 비율, 서류전형 커트라인 점수를 미리 정해놓은 흔적이 발견됐다.

하나은행은 임원면접에서 합격권에 든 여자 2명을 떨어뜨리고 합격권 밖에 있던 남자 2명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남자 102명, 여자 21명이 합격해야 하는데 순위를 조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 합격자 가운데 남자 비중이 월등히 높아졌다. 남자 104명, 여자 19명이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다. 남녀 비율은 5.5 대 1이다. 사전에 계획한 4대 1보다 남자를 더 많이 뽑았다. 같은 해 상반기에 있었던 공채에서도 의심 가는 대목이 있었다. 최종 합격자의 남녀 비율은 10.8 대 1(남자 97명, 여자 9명)로 남자 편향이 심각했다.

KB국민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2015년 상반기 채용 과정에서 남성 지원자 100여 명의 서류전형 점수를 비정상적으로 여성들에 비해 높게 매겼다. 이 때문에 점수 커트라인을 넘었던 일부 여성 지원자들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아진 탓에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인사팀장은 KB금융지주 HR총괄상무로부터 ‘최종 합격자 남녀 성비를 6 대 4, 또는 7 대 3으로 하라’는 지시를 받고 실제 행동에 옮겼다. 또 인사팀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상무로부터 받은 인사 청탁 명단을 관리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채용비리에 관여한 혐의(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인사팀장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노미정 판사의 심리로 4월 13일 열린 첫 공판에서 인사팀장의 변호인은 “인사 정책에 따라 지점에 필요한 인재들을 선발하면서 특정 지역이나 학교, 성별, 전공에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게 선발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조작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HR총괄상무도 기소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공범 관계인 두 사건이 병합돼 함께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공판은 5월 12일 열린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2016년 대리·행원급 신규채용에서 여성 합격자 비중은 하나 18.2%, 신한 31.4%, 국민 37.4%, 우리 38.8%에 불과했다. 다른 일반 기업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처음 출발부터 일부러 여성을 적게 뽑다 보니 승진에서도 성차별 구조는 계속 이어진다. 애초에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여성 직원의 인재 풀이 적은 탓에 임원급에서 여성의 비율은 한 자리 수에 머물고 있다. 하나은행의 여성 임원은 지난해 연말 임명된 백미경 소비자보호본부 전무 1명(3.8%)뿐이다. 국민은행 또한 박정림 WM부문 총괄부행장 1명(5%)이 유일한 여성 임원이다.

이 밖에 5대 시중은행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NH농협은행 6.7%, 우리은행 4.6%, 신한은행 4.2%다. 그러나 그룹장(부행장)급 이상으로 따지면 국민, 우리, 농협을 제외하고 신한, 하나에서 여성 고위 임원은 전무하다. 그나마 은행권 중 외국계에 속하는 한국씨티은행이 여성 임원 비율 38%로 높은 편에 속한다.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남녀를 차별해 평가하는 것은 명백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금융권 특성을 감안해도 은행권 최종 합격자에 남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는데 이번 채용비리 수사를 계기로 그 숨은 진실이 밝혀진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대형 은행은 보수적 남성 문화가 더 심하다”며 “이렇게 처음부터 차별해서 뽑기 때문에 나중에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적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성 차별 기업 불매운동 ‘애프터 미투’도 확산

여성들은 은행권의 ‘남성 우대’ ‘여성 홀대’에 분노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한정애·권미혁·송옥주·정춘숙·제윤경 의원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4월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 책임자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사죄와 사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요구했다. 이들은 “금융권 채용비리는 미래를 위해 처절하게 경쟁하고 있는 청년들의 희망을 한순간에 앗아간 가장 악질적인 범죄다”라며 “특히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필수적 기본권인 노동의 권리를 빼앗은 것은 최악의 범죄다”라고 지적했다. 또 “성차별 채용은 여성의 노동권을 빼앗았고, 사회적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 무형의 해악을 끼쳤다. 최고 수준의 신뢰를 요구받는 은행이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그릇된 맹신을 현실화한 범죄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는 ‘애프터 미투(After me too)’라 일컬어지는 여성 차별 기업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불매운동은 SNS상 ‘#여성차별_하나은행_불매’ ‘#여성차별_국민은행_불매’ 등의 해시태그 총공격 방식으로 진행된다. 불매운동을 이끌고 있는 계정 관리자는 “위미노믹스(womenomics)’ 시대라고 불릴 만큼 여성들의 구매 파워는 강력하다”며 “여성들이 겪어온 차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기업이 여성 소비자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그는 “다양한 여성 차별 지표를 파악해 현재 한국 기업들의 성차별 실태에 대해 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며 “해시태그 불매운동이 기업 내 성차별 고용과 남성 중심의 사내 문화, 임금 격차, 유리천장을 해결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CREDIT INFO
취재
윤아름 기자(여성경제신문)
사진
양문숙 기자(여성경제신문)
기사제공
여성경제신문
2018년 05월호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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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름 기자(여성경제신문)
사진
양문숙 기자(여성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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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