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과속스캔들>에서는 청순가련 유치원 여교사를,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에선 맘씨 고운 순진한 선생님을, 드라마 <선녀가 필요해>에서는 엉뚱한 성격의 식탐 많은 선녀를 연기했던 황우슬혜. 여리여리한 청순가련 스타일의 캐릭터를 줄곧 맡아온 그녀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는 할 말은 하는 당찬 성격의 능글맞은 캐릭터를 맡았고, 최근엔 예능 <SNL 코리아>에서 온몸에 금색 분장을 한 채 개그 본능을 발산하기도 했다. 그녀의 도전은 신선했다.
오늘 화보 촬영 어땠어요?
‘말괄량이’ 주근깨가 마음에 들어요. 지금까지는 긴 생머리의 청순가련 스타일, 그러니까 여성스러운 캐릭터만 맡아왔었기 때문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신나고 흥분돼요.
어떻게 변신하고 싶어요?
커트 머리 해보고 싶어요. 보이시한 느낌의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거든요. 소속사에서 ‘커트 머리는 아직 하지 말라’고 해서 앞머리를 잘랐죠.(웃음) 데뷔 초에 털털하고 남자 같은 역할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놓쳤어요. 변신의 기회가 또 온다면 그땐 놓치지 않을 거예요.
<혼술남녀>에서 연기한 ‘황진이’는 실제 슬혜 씨와 성격이 비슷한가요?
다른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렵게 연기했어요. 저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고, 임신 생각은 더더욱 없거든요. 욕을 한다거나 욱하는 다혈질도 아니에요. 여우 같은 스타일도 아니고요. 실제 저는 속으로 삭이는 편이고 곰처럼 행동하죠. 그래서 ‘황진이’ 캐릭터를 만들어갈 때 너무 힘들었어요.
나와 다른 캐릭터인데도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직장에서도 치이는 짠한 캐릭터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성격과 상반된 캐릭터라 재미있을것 같았어요. 저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매회 조금씩 연기가 편해지면서 재미있고 뿌듯해요.
‘황진이’처럼 남자친구한테 차인 뒤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니는 캐릭터, 어때요?
‘황진이’는 이별의 아픔을 금방 털어내는 스타일이에요. 사람들에게 “나 차였어”라고 말하고 다니죠. 저도 그 부분을 닮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꽁한 스타일이죠. 특히 연애에는 소극적이고 소심한 편이에요. 이별 때문에 가슴 아파도 티를 안 내죠. 헤어진 남자친구들은 제가 상처받았는지도 모를 거예요. 상처받은 걸 굳이 헤어진 남자친구한테 알려 뭐하겠어요. 자존심만 상하죠.
‘황진이’는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결혼을 하는 캐릭터죠? 같은 여자로서 이해가 되던가요?
솔직히 저도 대본 받고 놀랐어요. 남자친구도 아닌 남자와의 뜻하지 않은 첫날밤, 그리고 임신이라뇨? 실제 저라면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연기를 해야 하니까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이게 다 인연이다~’라고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연기했어요.
마인드 컨트롤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텐데, 도전을 즐기는군요?
연기 외적인 도전은 관심 없어요. 제가 ‘덕후스러운’ 기질이 있거든요.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거, 한번 마음 주면 그 마음이 쉽게 닫히지 않는 성격이죠.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죠. 그래서 그런지 데뷔 후 지금까지 연기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해본 게 없네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요?
요즘 검사나 변호사 역할을 해보고 싶어 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신문 사설도 찾아서 보고 발음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죠. 언젠가 한 번은 검사나 변호사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 미리 대비하는 거예요.(웃음) 악역도 해보려고 연기 연습 중이에요. 올해 연기 연습 2만 시간을 채우는 게 목표예요.
연기가 왜 좋아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어요. 캐릭터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심정을 알게 되니까 배려심도 느는 거죠. 저 자신을 다듬어주는 건 연기예요.
아무리 사랑해도 권태기가 오기 마련이에요. 연기하는 게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싫다거나 귀찮았던 적은 없어요. 다만 내가 내 캐릭터를 잘 소화할까 싶은 부담감은 있었죠. ‘진짜’처럼 연기하는 게 목표거든요. 거짓말로 연기하고 싶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거짓된 감정으로 연기하고 나면 시청자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해요. 그래서 어렵고 힘든 때는 있었지만 ‘못하겠다’ 싶었던 적은 없어요.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시청자에게 연기로 보여지고 싶은 마음이군요.
책임감이죠.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잘 안 보게 되거든요.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생각해요. ‘오늘은 뭐가 잘못됐지?’ ‘그 장면에서는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이런 거요.
그런 고민을 하니 사랑받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작품에, 캐릭터에 충실하려고 했을 뿐인데 함께 울어주시고 웃어주신 시청자분들께 너무 고마워요. 저를 예뻐해주시는게 감사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웃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런닝맨> <해피투게더><SNL 코리아><택시>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다시 심기일전해서 연기로 보답하고 싶어요.
더 일찍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너무 늦은 나이에 데뷔했죠?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일찍 데뷔했으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연기의 참맛을 잘 몰랐을 거예요. 어느 정도 철이 든 후에 시작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무던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지금처럼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
인기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인기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운도 따라줘야 하고요. 어리고 예쁜 후배들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이미 저는 늦었어요.(웃음) 무엇보다 인기가 거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인기에 집착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 그 거품이 사라지고 나면 허무할 테니까 미리부터 무뎌지려고 하죠.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기 없으면 없는 대로 열심히 연기하고, 인기가 많으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보답하려고 하고요. 인기가 좋아서 배우가 됐다면 지금까지 연기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한동안 뜸했을 때가 있었죠? 사람들한테 잊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잊힐까 봐 불안해서 작품을 서두르는 일은 없을 거예요. 기사 댓글이나 SNS 댓글을 잘 안보기 때문에 지금도 저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은 줄 몰랐어요. 사람들의 반응이나 관심에 무딘 거죠.
무딘 성격이 배우로선 좋을 수도 있어요.
평소에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를 많이 생각해요.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배운 삶의 방식이랄까. 할머니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이셨어요. 덕분에 제가 우직한 성격이 됐네요. 오죽하면 황소 기질이 있어서 ‘황소’라고 불리겠어요.(웃음)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인가요?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밖에 없네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지속되는 편이에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지금도 여전히 친하게 지내요. 데뷔 초에 알게 된 인연과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지내고요. 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죠.
어떤 스타일의 사람과 친해지는 편인가요?
털털하고 유머러스한 사람과 노는 게 좋아요. 공주병이나 왕자병이 심하면 아주 잠깐이라도 같이 있기 어려워요. 특히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요. 때로는 저도 저만 생각하긴 하지만, 늘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주변 사람들이 요즘 슬혜 씨의 인기를 보고 뭐라던가요?
요즘 제 남동생이 “나가서 놀긴 글렀다”고 말해요. 동생과 종종 이태원에서 놀곤 했거든요. 예전에는 모자 쓰면 잘 못 알아보셨는데. 지금은 어린 팬분들이 알아봐주니까 신기한가 봐요. 자꾸 “더 이상 누나랑 못 놀겠다”고 해요.(웃음)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예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관객들이 저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황진이’ 덕분에 하루의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는 말이 가장 좋았어요. 깜짝 놀란 게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분들이 생겼더라고요. 저로 인해서, 제 연기로 인해 잠깐이라도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를테면 전도연 선배님 같은 배우요. 제가 꿈꾸는 ‘진짜’처럼 연기하는 배우잖아요. 아직도 ‘진짜’를 고민한다는 말을 듣고 감명받았어요. 전도연 선배님의 경지에 오르기에는 갈 길이 멀겠죠?
여자로서는 어떻게 살고 싶어요?
곱게 늙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연기자로서 예쁘게 잘 늙는. 나이를 먹어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여배우랄까요? 이를테면 신애라 선배님 같은. 시간이 흘러도 소녀 같은 모습이 보기 좋잖아요. 힘든 사람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도 감동적이고요.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여자, 그렇게 되고 싶어요. 얼마나 더 많은 내공을 쌓아야 할까요? 노력할 테니 지켜봐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