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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훈의 이야기

‘내가 알고 있던 탁재훈’을 지우니 비로소 그의 새로운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On July 21, 2016

 


 

스튜디오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탁재훈이었다.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스케줄 때문에 끼니를 놓쳐 요 앞에서 숯불김밥을 사왔다”고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바나나를 가리키며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먹어도 되는 건가요? 혹시 촬영 소품인가요?” 김밥을 씹으며 탁재훈이 조용히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스틸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는 뭐든 하겠는데 말이죠. 열심히 준비해주셨는데, 잘 못해 촬영을 망치면 어쩌나 내내 걱정했어요.”

의외다. 탁재훈에게 행어에 걸린 옷을 보여주었다. 선명한 컬러, 화려한 프린트의 옷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옷이 참 예쁘네요. 그런데 제가 소화할 수 있을까요?” 촬영이 시작됐다. 테스트를 위해 포토그래퍼가 셔터를 눌렀다. 탁재훈은 말 그대로 얼어 있었다.

“팔이 어색하면 주머니에 손을 넣으세요. 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차라리 과감하게 포즈를 취하시고요.” 탁재훈은 지시를 묵묵히 따랐다. “좋아하는 음악 틀어드릴게요. 즐겨 듣는 뮤지션이 누구예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조용필이오.”

배경과 의상이 바뀌고 트랙이 넘어갈수록 탁재훈은 마치 얼음이 녹듯 자연스러워졌다. 안경을 쓰지 않고 사진 찍는 게 어색하다면서도, “민얼굴이 훨씬 예쁘다”라는 포토그래퍼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촬영에 임하는 저 남자가, 우리가 알던 탁재훈이라고?
“실제로 저를 본 분들은 놀라세요. 원래 이렇게 말이 없고 차분하냐고요. 부산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하루 일과도 되게 담담합니다.”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만 믿는다. 우리가 방송을 통해 봤던 것은 예능인 탁재훈의 겉모습뿐이다. ‘악마의 재능’ ‘애드리브 천재’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예능감과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일련의 사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알듯 탁재훈은 한때 연예계를 휩쓸었던 ‘불법 도박’이란 키워드에 연루된 바 있고, 이혼 등 가정 문제로도 부침을 겪었다. 한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생활했거든요. 제주도에 있을 때는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았어요. ‘반드시 이때까지는 복귀해야지’라는 계획도 솔직히 없었어요.”

탁재훈을 잊지 않은 방송계 인사들은 꾸준히 그에게 연락해왔다. 그중에는 <음악의 신> 프로듀서도 있었다. 우연히 마련된 식사 자리에서 프로듀서로부터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훈씨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구상해봐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탁재훈은 그저 “저야 감사한 일이다”라고 응수한 뒤 한동안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연락이 왔다. 탁재훈은 그렇게 최근 Mnet의 예능 프로그램 <음악의 신 2>를 통해 공식적으로 복귀했다. 이어 MBC <라디오 스타>와 〈snl 코리아7〉에 호스트로 출연했다. 그의 복귀는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중은 녹슬지 않은 탁재훈의 예능감에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많은 매체에서 그의 복귀를 가리켜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사실 복귀할 때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지 헷갈렸습니다. 지나친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며 가식적인 느낌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었죠. 이미 복귀의 주사위는 던져졌고, 방송 일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면 일단은 저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를 판단하는 것은 시청자분들의 영역이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제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요.”

다만 탁재훈은 ‘쫄지 않으려’ 했다. 주눅 든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본인에게도 바라보는 시청자분들에게도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능인이고, 대중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는 사람 아닌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차근차근 걸어가고자 했다.

화보 촬영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그가 마치 칭찬에 익숙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나아지는 그의 포즈와 표정에 대해 “정말 잘하고 있다”는 말을 던질 때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하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 이건 포즈를 취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수준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탁재훈은 시키는 건 정말 열심히 했다.

“바닥에 누워보세요. 시선은 카메라를 보지 말고 사선으로 길게 빼세요. 재훈씨, 한쪽 발로만 서보세요. 공중에 뜬 발은 학다리처럼 접어보실래요?” 묵묵히 포즈를 취하는 그의 이마에 어느새 구슬땀이 흘렀다.

“사진 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화보 촬영 거의 10년 만이거든요. 제가 포즈를 못 취해도 후반 작업 잘 부탁드릴게요. 잡지가 나오면 아이들에게도 화보를 보여줄 텐데 멋있는 모습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다. 탁재훈은 올해 중학교 1학년생인 딸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둔 아버지다.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자 탁재훈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애들이에요. 큰딸 소율이는 철이 일찍 들어 제게 오히려 가르침을 주는 친구 같은 존재죠. 요즘 사춘기가 와서 예민해진 면이 있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좋은 딸이에요. 얼마 전에는 소율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방탄소년단’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줬어요. 덕분에 점수를 좀 땄죠.”

탁재훈도 어쩔 수 없는 ‘딸바보’였다.
“저는 소율이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에요. 얼마 전에는 주차 위치를 바꾸려고 운전할 때 안전벨트를 안 맸는데 딸한테 혼났어요. ‘아빠, 왜 안전벨트 안 매? 그러다가 사고 나면 다치잖아!’라고 따끔하게 말하는데 가슴이 찡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딸 앞에서는 담배를 절대 안 피워요. 걱정시키기 싫어서요.”

반면 아들 유단이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다. 어렸을 때의 탁재훈을 꼭 닮았다. 딸하고는 다르지만 잘 통한다.
“우리 아들은 말수는 적지만 재미있어요. 저랑 코드가 맞아요. 게임이랑 축구에만 관심 있지 아직 좋아하는 아이돌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얘도 사춘기가 오는지 예전에는 누나가 ‘유단아, 사랑해’ 하고 다정하게 스킨십할 때도 잘 받아주더니, 요즘은 싫다며 도망가더라고요.(웃음) 둘이 부쩍 많이 싸운대요. 그래도 속으로는 서로를 챙기는 남매예요.”

일정이 없는 주말에 탁재훈은 아이들과 만나 밥도 먹고 쇼핑몰에도 가고 영화도 본다. 며칠 전에는 <정글북>을 봤는데 아이들보다도 탁재훈이 더 감동을 받았단다.
“아이들은 아빠가 일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음악의 신 2>는 아이들이 보기에 별로 재미가 없나 봐요. 아직 어린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좀 어려운 코드죠. TV로 첫 회를 보다가 고모한테 ‘딴 거 보면 안 돼?’라고 물어봤대요.(웃음) 저 상처 안 받았어요. 정말이에요.”

아이들은 탁재훈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는 것이 현재 그의 유일한 목표다. 사랑하는 만큼 때로는 미안하다. 유명인의 자녀로 살며 겪지 않아도 될 상황을 겪게 했으니까. 극장이나 쇼핑몰에 가면 아이들은 사람들이 아빠가 탁재훈인 것을 알아볼까 봐 먼저 긴장하고 조심한다고 했다. 그래서 탁재훈은 늘 더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담배도 끊어야 해요. 사실 아이들 때문에 5년 정도 끊었어요. 어느 날 일본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데 웬 남자분이 화창한 하늘 아래서 정말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정신 차려보니까 제가 담배를 사서 입에 물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봇물 터지듯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됐죠.”

탁재훈은 이제 술도 잘 안 마신다. “솔직히 쉴 때는 좀 많이 마셨는데, 이제는 안 그럽니다. 철없던 시절 다 놀아봤는데요, 뭐.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이제라도 알게 돼 다행이에요.” 그가 멋쩍게 웃었다.

지금도 바쁘지만 탁재훈은 조만간 더 바빠질 예정이다. 방송 활동 외에도 절친 뮤지와 함께 청담동에 ‘뮤직바’를 오픈해 운영할 예정이다. 스케줄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가게에 들러 인테리어를 체크했을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준비한 공간이다.
"‘뮤직바’를 오픈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첫 번째로는 제가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때로는 술잔을 기울이며 쉴 수 있는 공간 하나쯤 있었으면 했고요, 두 번째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못 뵈었던 지인들을 챙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뮤지와는 함께 음반도 준비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가 나온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시점이다. 허투루 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도 음악이 정말 좋고 늘 노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종합검진에서 성대 결절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수술 받아야 한대요. 목에 물리적인 치료를 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계속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어요. 담배도 얼른 끊어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그의 가수 복귀는 반가운 소식인 동시에 한 남자의 이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컨츄리 꼬꼬’를 함께 했던 신정환이다. 신정환은 현재 아내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팬이 많다고 운을 띄우니, 탁재훈이 고개를 저었다.

“늘 감사드리죠. 컨츄리 꼬꼬를 하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컨츄리 꼬꼬의 컴백 계획은 없습니다.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해요. 정환이가 외국에 있다 보니 자주 보지는 못해도 연락은 종종 합니다. 정환이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언제든 복귀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하지만 결국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요. 정환이랑은 멀리 있더라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사이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정환이는 잘해낼 거예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탁재훈이 데뷔한 지 30여 년이 흘렀다. 힘든 신인 시절을 거쳐 온 국민의 재간둥이 콤비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예능인으로서 정점에 오르기도 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돌고 돌아 탁재훈이 깨달은 것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 직업의 가장 힘든 점은 ‘어른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방송을 하는 때만큼은 철들지 않은 아이처럼 자의식을 내려놓고 몰두해야 한다는 거죠. 철이 들면 상황이 보이고, 상황이 보이면 절망하는 경우가 많죠. 결국 멘탈 싸움이더라고요. 이제는 튀지 않고 조용히 스며들듯이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요. 같이 손잡고 한 발 정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편하게 말이죠.”

인생의 거창한 목표는 어느새 사라졌다고 탁재훈은 말했다. 예전에는 급했고, 또 욱했다. 요즘은 물 흐르듯 잔잔하다. 잘나갈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며 그는 웃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화보 촬영과 인터뷰도 제게는 큰 미션이었는데 어느덧 끝나가네요. 재미있게, 그리고 열심히 했는데 괜찮았나요?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일상이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난 뒤 탁재훈은 포토그래퍼에게 다가가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청했다. 얼굴을 모니터에 바싹 갖다 댄 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던 그의 옆얼굴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CREDIT INFO
취재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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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선
협찬
에트로, 13먼스, 구찌, 반하트 디 알바자, 하우스 오브 르네, 비슬로우, 게스, 어썸 이미지네이션, 다니엘 웰링턴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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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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