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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의 봄

서른한 번째 봄을 맞는 이국주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유쾌함 속에 진중함을 갖춘 그녀와 나눈 정직한 수다.

On April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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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들어선 개그우먼 이국주와 인사를 나누다가 놀랐다. 그녀의 목소리가 무척 쉬어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몇 주째 이 모양이라며 그녀는 웃었다.

“며칠 전에 라디오 방송할 때는 아예 목소리가 안 나와 게스트에게 진행을 맡겨야 했어요. 병원에 갔더니 목을 완전히 낫게 하려면 2주는 쉬어야 한대요. 현재로서는 쉴 수 없어 방치한 상태죠.”

이국주는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SBS 라디오 <이국주의 영스트리트>로 청취자들과 만난다. 2015년 1월 5일 자신의 생일이었던 그날부터 DJ를 맡은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면 가슴이 뛴다.

“저는 라디오 DJ가 되려고 개그우먼이 된 여자거든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들으며 다짐했었죠. 그래서 아무리 목이 아파도 절대 못 쉬어요. 말 한마디 못하고 게스트 앞에 앉아 있을지언정 DJ 자리는 꼭 지키죠.(웃음)”이국주는 요즘 잠이 부쩍 줄었다. 새벽 3시쯤 잠들어 서너 시간 눈을 붙인 뒤 일어난다. 잠을 많이 자면 열심히 살지 않는 느낌이 든다. 살면서 스스로를 편하게 둔 적이 없다는 그녀는 요즘 따라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해봤으니까 이제는 뭐가 가장 잘 맞는지 골라 거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내가 뭘 가장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욕심나는지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어요.”

2014년 이국주는 배우 김보성의 유행어인 ‘의리!’를 패러디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각종 예능에서 넉넉한 몸집만큼이나 당당한 애티튜드와 재치로 대세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녀의 인기를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면 안 된다. 2006년 MBC 15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이후 9년간 꾸준히 활동하며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왔기에 가능한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잘나가는 이국주’지만, 조금만 주춤해도 연예 뉴스란에 “이제 한물갔다”라는 댓글이 올라오기 십상인 연예계다. 그녀 역시 그런 이야기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이국주는 스스로를 ‘유리 멘탈’이라 칭하며 마음 고생을 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아까 제가 조금 과감한 콘셉트로 촬영할 때 머뭇거렸잖아요? 저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지만, 대중이 그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거든요. 저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좋아하면서도 ‘적정선’을 넘을 때마다 정확하게 비판해주시더라고요. 아프지만 감사한 가르침이죠."

이국주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인기라는 게 영원한 게 아니라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예전만큼 잘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료들이 잘되는 것에 대한 질투는 전혀 없어요. 박나래나 장도연이 잘되는 건 제게도 감사한 일거든요. 힘들었던 무명 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들이 잘되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니 서로 시너지 효과도 나고요. 아무리 바빠도 저희끼리는 2주에 한 번은 만나 힘든 일은 위로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하는 고민을 그들도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요. 언제나 ‘당당하게 살자’는 주의였는데 요즘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많이 위축됐어요.”

이국주는 요즘 ‘오춘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넘어지고 좌절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빗대어 한 말일 것이다. 서른한 살에 찾아온 오춘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더 바쁘게 일하기’다.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이 점점 커져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도록 그 나름의 자구책을 세운 것이다.

“쓸데없이 고민할 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부자되려고요. (웃음) 요즘 30년 넘게 살아온 삶을 차분히 되돌아봤어요.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후회 없이 열심히 달린 나한테 칭찬해주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동시에 아직도 스스로를 잘 모른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래서 요즘 ‘이국주 찾기’ 프로젝트 중 하나로 취미생활을 찾고 있어요.”

'노는 것'도 이젠 재미가 없다는 이국주는 자신을 채워나갈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찾고 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요즘 다시 그림을 그릴까 생각 중이다. 어제도 그림 한 점을 건졌단다. 최근에는 비싼 핸드백을 살까 했는데 막상 백화점에 가니 못 사겠더라며 웃었다.

“결국 가방 대신 카메라를 샀어요. 쇼핑몰을 운영하니까 하나 필요했거든요.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아요. 몸이 커서 큰 차를 좋아하고요.(웃음) 스트레스 받을 때 스피드 내서 달리면 속이 시원해지거든요. MBC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차는 세 번째로 산 거예요. 돈 많이 벌면 꼭 사고 싶은 드림카는 원빈씨의 애마인 ‘지바겐’이에요. 갖고 싶은 차를 보면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죠.(웃음)”

연애는 안 하냐고 넌지시 운을 떼었다. 이국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이 들수록 인생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이 확연하게 줄어드는 걸 느껴요. 예전에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상의 전부를 바쳤거든요. 정말로 100%요. (웃음) 심지어 그게 짝사랑이라도 거기서 힘을 얻었죠. 지금은 아니에요. 스스로가 안정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이러한 변화는 그녀에게 득일까, 아님 독일까? 이국주는 한참을 생각하다 “좋은 변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이잖아요.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씁쓸해요. 이러다 아예 감정이 메말라 나중엔 사랑을 못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앞으로는 짝사랑은 하지 않으려고요. 상처받는 건 그만하고 싶어요.”

촬영 내내 이국주는 조금 수줍어했다.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그녀에게 포토그래퍼는 “개그 본능을 버리라”고 주문했다. “나도 모르게 웃긴 표정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하냐?”며 짐짓 투덜대면서도 능수능란하게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국주. 역시 프로다.

“화보 촬영은 오랜만이네요.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도 ‘빡세게’ 하고 네일도 받았어요. 새끼손톱에 구슬을 박았는데 예쁘죠?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오늘 메이크업 받으면서 실장님한테 혼났어요. 피부가 너무 안 좋아졌다고요.”
 

 

흰색 블라우스에 연보라색 플레어스커트를 맞춰 입은 그녀가 포토그래퍼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했다. “봄날의 햇살 들어오는 집에서 촬영하는 콘셉트이니 과한 액세서리는 하지 말자”며 소품을 직접 고른다. 의류 쇼핑몰을 운영해서인지 옷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피고 콘셉트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시안과 느낌이 조금 다른데 차라리 흰 블라우스에 블랙 팬츠로 매니시한 느낌을 강조하면 어떨까요?” 스스로 정한 코디대로 의상을 차려입은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예쁘다.

“진심이세요? 저는 예쁘다는 말 별로예요.(웃음) 인터넷에서 볼 때마다 마음이 찔리는 댓글이 있어요. ‘여자들은 이국주가 예쁘다고 하면서도 막상 이국주를 닮았다고 하면 싫어하잖아’(웃음) 처음에는 기사마다 그 댓글이 달려 불쾌했는데 맞는 말이더라고요.(웃음) 대중이 저를 좋아하는 포인트는 ‘예쁘지 않은 외모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린 팬들이 ‘언니, 예뻐요!’라고 말하면 저는 ‘거짓말 마!’라고 응수하죠.(웃음)”

여전히 바쁘지만 이국주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스스로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간 연락 못 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추리만화를 본다. 최근에는 드라마 <시그널>에 푹 빠져 지냈다.

“<시그널>을 보면서 단순히 재미만 느낀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연기 논란이 있었지만 어느새 극복하고 배역과 혼연일체된 모습을 보여준 이제훈씨를 보면서 감동받았고, 어렸을 때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폭넓은 나이대를 소화해낸 김혜수씨에게 경탄했어요. 날렵하게 변신한 조진웅씨의 가슴 절절한 순애보 연기를 보면서 ‘프로페셔널이란 저런 거구나’ 하고 마음에 새겼고요. 10점 만점에 11점을 주고 싶은 드라마예요. 바로 어제 마지막 회를 챙겨 봤는데, 마음이 허해요. 이제 뭘 봐야 하죠? <태양의 후예>는 안 볼 거예요. 당분간 제 인생에 로맨스와 관련된 것은 멀리할 예정이거든요.(웃음)”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건 ‘라디오 DJ’라는 역할이다. 슬픈 일이 있는 날에는 청취자들이 귀신같이 “국주씨, 오늘따라 왜 그리 힘이 없어요.”라며 메시지를 보내온다.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함께 공유하는 청취자들에게 도리어 그녀가 위로받은 적도 있다.

“라디오는 정직해요. 속임수가 안 통하죠. TV 시청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속이기 쉬워요. 표정이나 액션으로 오버하면 감정을 숨길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라디오는 청취자들이 2시간 동안 오롯이 제 목소리에 집중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일상의 희로애락을 들킬 수밖에 없어요. 청취자들과 나누는 끈끈한 정은 정말 DJ를 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에요. 제가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라디오 DJ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평생 하고 싶어요.”

이국주는 최근 목표를 하나 세웠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토크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관객들과 대화하고 이국주의 트레이드마크인 댄스 퍼포먼스도 할 수 있는 버라이어티하고 즐거운 콘서트를 만들고 싶단다. 팔짱 끼고 날카롭게 지켜보던 관객들도 어느새 뛰어놀 수 있게 만드는 멋진 콘서트를 언젠가는 꼭 열고 싶다.

“이런 꿈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코미디빅리그>는 계속하려고 해요. 관객 바로 앞에서 무대를 선보이며 현장에서 분위기를 휘어잡는 노하우를 배워가는 거죠. 제 뿌리는 개그고, 그걸 잘해야 다른 기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아요. 다행히 요즘 하는 코너인 ‘오지라퍼’가 반응이 좋아요. 관객들의 호응이 점점 좋아지고 순위도 올라가 얼마 전에는 드디어 1위를 했어요. 호흡을 맞추는 상준 오빠에게 늘 고마워요. 제 주변엔 귀인이 많아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매니저 오빠랑 스타일리스트에게도 늘 고마워요. 내가 왜 힘든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이국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친한 옆집 언니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로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었다. 비록 삶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지라도 서른한 살 이국주의 봄날은 여전히 찬란하다.

CREDIT INFO
취재
정지혜 기자
사진
이진하
스타일링
석예리
의상협찬
H라인, 스타일M, 쭈당당, 달콤, 티쏘
2016년 04월호
2016년 04월호
취재
정지혜 기자
사진
이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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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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