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를 처음 만난 것은 7월이었다. 거액을 횡령한 채 잠적한 공동대표 때문에 그가 세운 소속사가 파산했지만 김준호는 숨지 않고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언론과의 접촉은 조심스러워했다. 한마디 짧은 말로도 진의가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속내를 털어놓겠다고 마련한 자리였다.
김준호는 여전히 익살스러웠다. 마이크 테스트를 할 때도 “아~ 아아” 대신 “파, 파산”이라고 말해 기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하는 그를 보며, ‘참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사진 촬영을 위해 그를 다시 만났다.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아 보였다. 왜 이렇게 멋있게 차려입었느냐고 물으니, 사진 찍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입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야외에서 촬영을 하자는 제안에 매니저는 난감해했지만, 김준호는 얼른 가자며 앞장선다. 갑자기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촬영을 위해 설치해둔 간이벽이 무너져 촬영이 지연되었을 때도 그는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의 여의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텐데도 참 편안해 보인다. 왠지 다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많이 나아졌죠.(웃음) 2~3월에만 해도 억울함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괜찮네요. 가끔 그 힘들었던 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는 해요.”
유난히 후배들을 아끼는 김준호는 자신을 포함한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2011년 코코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그러나 코코엔터테인먼트의 파산으로 본의와 다르게 후배들에게 피해를 줬다.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일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연예인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슨 말을 하든 이슈가 되니까요. 저 역시 피해자인데 가해자인 것처럼 대하시는 분들의 태도도 상처였죠. 혹시 도망간 사람이랑 같은 패 아니냐는 댓글에서는 정말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이젠 좀 맘이 편해졌어요. 나는 어차피 광대니까, 광대 역할을 해야 할 때는 그거 열심히 하고, 아닌 때에는 법정 가면 되는 거고.(웃음)”
그는 후배 코미디언과 전속 계약 할 때도 합리적인 원칙을 가지고 배려하려 애썼다. 가령 수입이 비교적 많은 코미디언과의 커미션은 6:4, 아직 수입이 많지 않은 코미디언과의 커미션은 8:2 정도로 운용했다. 언론에 나온 만큼 소속사의 상황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단다. 횡령 사건만 없었어도 이국주, 김준현, 김지민 등의 인기가 상승세였기에 그런 대로 잘 꾸려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김준호는 차분히 설명했다.
절망하기에 충분한 상황, 그는 도망가거나 숨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바쁘게 움직였다. KBS <개그콘서트>와 <1박2일>에 꾸준히 출연했고, 동료 코미디언과 힘을 모아 만든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총괄을 맡아 이끌어가는 그는 여전히 본인 자신보다 후배들을 챙긴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라면 조금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나?
“타고난 성격이 그래요.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후배들이 잘되어야 선배들도 잘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국주, 지민이, 준현이같이 잘나갔던 애들이 그 당시 수입이 많이 들어왔는데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돌려주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입은 피해를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죠.”
요즘 <개그콘서트>, 솔직히 힘 좀 많이 빠진 거 아니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도 기분 나쁜 내색 하나 없이 바로 인정했다. 능청스럽지만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그.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유행어를 터뜨려주는 인물이 지금 현재 없으니까. 그래도 그 친구들(후배 코미디언) 정말 재능 있고 열심히 하니까, 다시 치고 올라갈 겁니다. 항상 그랬어요.”
그에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대해 물으니 갑자기 수다스러워졌다. 그간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삼갔던 그가 처음으로 기자들을 초청하는 시간을 가진 이유도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페스티벌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면 일찍 넘고, 편한 길을 걷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1·2회 진행하면서 쌓인 노하우도 있고, 또 감사하게도 이 페스티벌에 대해 좋게 보도해주신 기자님들 덕분에 부산시에서 예산을 지원해주기로 했어요. 사실 예산 규모가 꽤나 큰 축제인데, 턱없이 부족한 비용으로 어떻게 첫 회를 진행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놀랄 일이에요.”
부족한 예산은 작가들의 재능 기부와 김준호를 비롯한 뜻 있는 개그맨들의 사비로 채웠다. 자신의 주머니 상황이 안 좋은데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예산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웃어 보이는 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진행하다 보니 감이 와요. 첫째로는 국가를 막론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공연은 역시 넌버벌(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극)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등에 압축적이고 짧은 개그 콘텐츠를 올려야 한다는 거예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콘텐츠도 다양하게 만들어볼 작정이에요. 페스티벌이 진행되기까지는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지만, 이 페스티벌에 자극받고 자신의 개그 콘텐츠를 개발하는 후배들을 보면 멈출 수가 없어요.”
코미디에 대한 그의 열정은 무서울 정도다. 최근에도 어떻게 하면 멜버른이나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축제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보려고 직접 다녀왔단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인기 코미디언과 함께 선보인 화제의 연설 ‘오바마의 분노 통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얼마나 멋진 퍼포먼스냐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의 개그 본능은 촬영 때도 이어졌다. 햇살이 내리쬐는 벽 앞에 그를 세워뒀을 뿐인데, 온갖 개구진 표정을 지어가며 기자도, 포토그래퍼도, 매니저도,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발걸음을 잡아두고 깔깔 웃게 만들었다. 여의도 한복판에 순식간에 작은 사람 띠가 만들어졌다. “팬이에요!” 하는 시민들을 향해, 그는 수없이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가라앉은 게 느껴지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조용히 웃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웃음)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동료들의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변함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갑자기 (차)태현이가 생각나네. 참 좋은 친구예요. 대희 형이오? 뭐 말할 필요 있나?(웃음) 영어 공부하러 건너간 아내랑 떨어져 살아서 많이 외롭고 보고 싶어요. 지금은 후배 명훈이랑 같이 사는데 요즘은 집에 거의 못 들어 가다 보니 얼굴도 잘 못 보죠.”
이날의 촬영은 여의도를 돌아다니며 진행됐다. 그는 연예인이라는 자의식이 전혀 없이 길을 걸었고 기자에게 친구처럼 말을 걸었다. 기자의 깨진 휴대폰을 보고는 “남자랑 싸울 때 던지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박살나기는 어렵다”며 농담을 던졌고, 한창 살이 쪄서 큰일이라는 기자의 고민에는 “살 빼는 데는 안주 없이 생소주를 마시는 게 직방”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줬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사람 모두에게 수더분하게 인사했다. 이날 여의도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 중 그를 보고 웃지 않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알게 되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 김준호를 만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