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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 하거나 천재 이거나

그는 두 번째로 게임을 잘하는 프로게이머였다. 지금은 뇌가 섹시한 남자이자 가슴 따뜻한 동네 오빠로 변신해 뭇 여성의 이상형으로 손꼽힌다. ‘야심가’ 홍진호를 만났다.

On July 29, 2014


프로게이머 출신인 그를 설명하는 데 있어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1997년 블리자드사에서 개발한 이 게임은 1999년 확장팩 ‘브루드워’로 국내에서 정식 발매된다. 불법 게임CD가 판치던 시대에 5만 장만 팔아도 성공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 약 3백만 장이란 판매고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저는 그때 고등학생이었어요. 게임을 즐겨 하는 편이긴 했는데 이 게임은 확실히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략을 짜고 빌드(건물을 짓는 순서나 유닛을 뽑는 순서를 뜻하는 e스포츠 용어)를 만들어 심리전을 통해 상대방의 본 진영과 멀티 진영을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죠. 그래서 제 닉네임이 ‘폭풍’이었습니다.”

승부사 기질이 남다른 그는 PC방에서 주최하는 ‘스타’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 전국을 돌며 게임을 했다. 그사이 게임 시장은 점차 커져 프로게임 리그가 창설되고 프로게이머란 신종 직업이 생겨났다. 잘나가는 대기업들은 저마다 대회 스폰서로 나섰고 게임 채널도 생겨 선수들의 대회 모습이 전국으로 방송됐다. ‘e스포츠의 태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꿈 같아요. 프로게이머의 인기가 웬만한 연예인 인기 못지않을 정도로 어디를 가도 주목받던 시절이었죠. 처음에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여러 대회에 출전하며 받은 상금 7백 만원을 부모님 앞에 놓고 ‘딱 1년만 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만둘게요’라고 말했죠. 그 뒤로 10년을 더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네요.”

한데 그에게는 늘 ‘2인자’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바로 1인자, ‘스타크래프트의 황제’ 임요환의 존재 때문이었다. 사실 ‘2위’ ‘준우승’이란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유독 냉혹한 시선을 보냈다.

“제가 나중에 세어보니 메이저급 대회에서만 준우승을 스물세 번 했더라고요. 사람들은 저에게 ‘만년 2인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스토리를 만들기 바빴죠. ‘홍진호의 한계는 거기까지다’라고 말이죠. 그 당시에는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준우승이라도 정말 잘한 거 아닌가요?(웃음) 지금은 저를 ‘2인자’라고 불러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들 하던데 2등도 많이 하니까 다들 기억해주시더라고요.”


그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은퇴한 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천천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방송국에서 섭외 전화가 왔다.

“프로게이머는 보통 20대 중반이면 노장이란 소리를 듣는데 저는 서른까지 했으니 굉장히 오래한 편이죠.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명감으로 했던 것 같아요. ‘1세대 프로게이머로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려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버티자’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서른이 되던 해에 미련 없이 은퇴하고 쉬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tvN 예능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

제작진에게서 전화가 왔죠. 심리추리게임을 방송으로 옮길 생각인데 저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다면서요. 재밌을 것 같아 바로 응낙했습니다.”

연예인들 사이에 섞여 잘 보이지 않던 그가 회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재치와 순간적인 판단력, 썩 괜찮은 외모. 그는 게임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던 ‘폭풍저그’ 홍진호에서 방송인 홍진호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다른 출연자들은 방송을 위해 출연했다면, 저는 진짜 이기고 싶어 방송을 했거든요. 시청자들이 ‘뭔가 어설픈 애가 되게 열심히 하네’라고 느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저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았어요. 그 뒤 예능 의 ‘GTA’ 시리즈에 섭외됐고, 이어서 <렛츠고 시간 탐험대> <로맨스가 더 필요해>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JTBC 예능 <크라임씬>이나 SBS 파워FM <케이윌의 영스트리트>에도 출연하게 됐습니다.”

방송 쪽의 일은 처음이다 보니 아직은 낯선 게 당연지사. 프로게이머 시절보다 지금이 더 어렵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배워가는 삶이 즐겁다.

“선수 때는 보통 자정까지 계속 연습해요. 그리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연습, 연습이죠. 요새도 물론 바쁘지만 오히려 저는 방송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 어울리는 지금이 더 좋아요. 어머니도 지금은 친구분들과 얘기할 때 당당하게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홍진호가 내 아들이야!’라며 좋아하세요. 직업으로 봤을 때 더 어려운 쪽은 역시 방송입니다. 연예계에선 제가 신인이다 보니 무조건 촬영장에 일찍 가려고 하고 다음 날 방송 스케줄이 있으면 전날에는 술 한 잔도 안 하고 일찍 잡니다. 변수를 만들기 싫거든요.

혀 짧은 발음이야 프로게이머 시절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방송인으로 나오다 보니 조금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아요. 머리로는 고치려고 하는데 입은 컨트롤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컨트롤만 하는 직업을 십 년을 했는데….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제 캐릭터로 가져가려고요. 의 민교 형도 지금처럼 가는 게 오히려 더 인기를 끌 것 같다던데요?(웃음)”


프로게이머 시절 홍진호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는데 팬카페 회원 수만 해도 약 40만 명으로 프로게이머 사이에서 압도적인 2위였다. 그때는 연예인 친구도 굉장히 많았다.

“그룹 신화의 충재 형(전진의 본명)이나 혜성이 형, (박)완규 형, SS501의 형준이 같은 경우는 항상 어울려 다녔어요. 한 번 연락해서 꼭 만나고 싶은 분들인데 제가 군대에 다녀온 뒤 다 연락이 끊겼네요. 특히 신화 형들은 제가 이렇게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조언해줄 분들이거든요. 보고 싶네요, 다들.”
머리 회전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프로게이머들을 만나 수없이 이겼고, 두뇌 싸움이 치열한 택사스 홀덤 게임(포커 게임의 한 종류)계에서도 그는 준프로급의 포커 플레이어로 유명하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한 그가 느낀 연예계의 적수는 누구일까?

“차민수 선생님은 프로겜블러라서 그런지 정말 머리가 좋으시지만 연예인은 아니잖아요. 그룹 인피니트의 성규도 기본적으로 센스가 넘치더라고요. 박지윤 누나(아나운서)도 암기력이 일단 좋고 상황 판단도 빠른 사람이에요. 제가 만난 사람 중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상민 형입니다. 그 형은 소위 ‘촉’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신기(神氣)’가 있어요. 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간파하는데 심지어 성공률도 높죠. 인생을 살며 많은 풍파를 겪어서 잘 맞추는 것도 같고. 하여튼 무시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더라고요. 그 형은 프로게이머를 해도 잘했을 것 같은데 이미 나이가 많으셔서….(웃음) 형님, 사랑합니다!”

<더 지니어스> 시즌 1·2에서는 뇌가 섹시한 남자의 이미지로,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만 같은 다정한 이웃집 오빠로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이상형으로 꼽고 있는 홍진호. 실제로 여러 여자 연예인들과 열애설 기사가 나기도 했다.

“NS윤지나 차유람 선수, 그리고 레이디 제인 모두 다 정말 친한 동생들이에요. 방송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아무래도 제가 사람들과 좀 빨리 친해지는 편이라 그런 근거 없는 소문이 난 것 같아요. 오히려 걔네들과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전혀 없어서 제가 다 서운하답니다. 지금도 편하게 연락하고 같이 밥 먹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 나이로 서른셋. 슬슬 결혼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기에 그의 이상형은 어떨지 궁금하다.
“결혼관은 특별히 없네요. 그냥 막연히 서른다섯쯤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2년밖에 안 남아서 못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 늦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상형이라면 음, 저와 마음이 잘 통하는 여자분이면 좋겠어요. 너무 뻔한 대답이죠? 하지만 진심입니다.

프로게이머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워낙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데 이런 저를 이해해줄 수 있는 분이라면 좋겠어요. 이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이런 문제 때문에 트러블이 많아 결국 헤어졌거든요. 이해심 넓고 함께 있을 때 잘 어울릴 수 있는 활달한 성격, 그리고 수수한 패션 스타일의 여자라면 연락주세요. 물론 얼굴이 예쁘면 더욱 행복할 것 같아요.(웃음)”

인기 절정의 프로게이머가 오늘날 방송인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그가 다시 e스포츠업계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운명은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찾아오는 것이다.

“‘돌아간다’는 말은 그렇고 저는 게임과 방송 두 가지를 병행할 생각입니다. 제 인생의 반을 투자한 게임 쪽을 좋든 싫든 안고 가야죠. 현재 몇몇 지인과 ‘콩두컴퍼니’라는 IT프로모션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은퇴한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게임 광고를 대행하고 직접 시연하는 이벤트를 하는 사업이죠. 프로게이머들이 은퇴하고 나면 관련 업계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만큼 e스포츠업계의 복지는 열악한 수준입니다. 제가 이 사업을 잘 정착시켜 은퇴한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하든 즐겁고 재밌게 하고 싶다”는 홍진호는 방송에 임할 때도 가장 첫 번째로 즐거움을 꼽는다. 스스로 즐거워야 지켜보는 사람들의 행복 지수도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연예계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노홍철이다.

“홍철이 형은 100% 방송을 즐기며 합니다. 방송과 실제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몇 안 되는 사람이죠. 저는 그런 형의 모습이 너무 멋지게 느껴져서 저도 역시 항상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 중이죠.”


국내외의 큰 대회에서 입상하며 멘탈이 강한 것으로 유명한 그에게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했다.
“저는 선수 시절 만년 2위였잖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안 해본 방법이 없는데 냉정히 말하면 멘탈을 관리하는 비법은 없더라고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그래, 내가 이렇게 했으니 내일 시험을 잘 볼 거야’ 식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편이 나은 것은 확실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자, 여기까지 만년 2인자가 아니라 언제나 2위 이상을 하는 홍진호였습니다.(웃음)”

CREDIT INFO
취재
이충섭
사진
김승환
스타일리스트
박경민, 박미영
헤어&메이크업
살롱드 뮤사이(1544-7442)
의상협찬
네오리즘·뉴발란스·르꼬끄·미소페인터크루·시저타이·지오송지오·카파·킨록투·티엔지티맨·헤지스맨
2016년 02월호
2016년 02월호
취재
이충섭
사진
김승환
스타일리스트
박경민, 박미영
헤어&메이크업
살롱드 뮤사이(1544-7442)
의상협찬
네오리즘·뉴발란스·르꼬끄·미소페인터크루·시저타이·지오송지오·카파·킨록투·티엔지티맨·헤지스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