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희 옷을 기워 입힌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래요. 근데 아들 키우는 엄마라면 다들 별스럽지 않다며 공감하실 거예요. 왜 하지 말래도 자꾸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지 몰라요. 다른 덴 멀쩡한데 무릎만 해지니 그냥 버리기 아깝잖아요. 그래서 딱 두 번만 드문드문 손바느질로 기워 입혀요. 왜 두 번이냐고요? 어느 날 파파라치 컷에 잡힌 세 번 기운 룩희 바지를 봤는데, 그건 좀 심하더라고요.(웃음)”
“룩희(5세)가 어릴 때는 엄마만 찾아 아빠를 서운하게 하더니, 요즘엔 정말 쿵짝이 잘 맞아요. 확실히 아이들은 정직해요. 오빠가 작품 끝나고 나서 거의 모든 시간을 아이랑 보내니까, 이젠 엄마는 안중에도 없어요.” 품에 폭 안겨 ‘사랑한다’고 표현할 줄 아는, 그녀의 이야기 속 룩희는 딸 부럽지 않게 애교가 많은 아들이다. 때론 삶에 통달한 도인처럼 쿨하게 말하는 엄마 닮은 아이이기도. “어느 날 밤 출출하다고 해서 쑥떡을 주었더니 그렇게나 맛있게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양치질하고 자리에 눕더니 이불을 덮어주는 저한테 이러더군요. ‘이런 게 바로 행복이야’라고. 이런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리가 알던 배우 손태영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다. 톰보이적 기질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지닌 여자. 촬영장에 늦게 나타난 스태프의 어깨를 툭 치며 왜 늦었느냐고 투정 섞인 말을 내뱉다가도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려 환하게 웃으면 같은 여자라도 사르르 녹을 판이다. 약간만 미소를 띠어도 시원스러워 보이는 입매,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도 복이다.
real simple 손태영
논현동 스튜디오로 손태영이 들어섰다. MBC 드라마 <두 여자> 이후 4년 만에 KBS2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의 조신한 맏언니 ‘혜신’으로 돌아온 그녀다. 성큼성큼 스치듯, 하지만 해맑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곤 메이크업 도구가 세팅된 파우더룸 거울 앞에 앉았다. 무지 티셔츠에 핫팬츠, 젤리 슈즈 차림의 뻔한 등장이었지만 충분히 근사했다. 도도하지만 부드럽고, 새침하다가도 소탈한 애티튜드도. 무엇보다 화보치곤 자칫 밋밋해 보였던 룩을 그녀는 드라마틱하게 입어냈다. 극적이라는 것, 어떤 환상적인 코드로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건 화려함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손태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간결하고, 심플하다.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액세서리는 최대한 배제하고 심플하게 입는 걸 좋아해요. 그렇다고 패션에 무관심한 건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이에요. 드라마에서 스타일링을 결정할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든요. 실제로 제 옷을 입는 경우도 많고요. <최고다 이순신> 속 ‘혜신’의 룩에도 제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되었죠.”
꾸밈없는 건 옷차림만이 아니다. 그녀는 시종일관, 애매하게 감추거나 장황한 말로 변명하기보다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냈다. 촘촘하게 짜인 선입견의 공간 속 그녀와 달리 몇 마디만 나눠보면 느낄 수 있는 반전의 매력. 그녀의 털털함은 보통이 아니다. 손태영이 말하길, 권상우 역시 겉보기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고. “선입견을 가지는 건 당연해요. 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었거든요. 작품을 할 때 제가 지닌 이미지에 맞는 역할을 맡아왔지, 이미지 변화를 시도한 적이 없었죠. <최고다 이순신> 속 ‘혜신’의 경우만 해도 연기하는 제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할 정도예요. 저는 걱정이나 고민이 있어도 일단 졸리면 한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요.” 물론 솔직한 모습이 도리어 독이 된 적도 있다. 그래서 작정하고 솔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정답은 아니었다. 그저 물 흐르듯 두는 수밖에. 결혼 후 그녀는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던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대중은 그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손태영 24시
“쉬면서 대부분 집에 있었고,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냈어요. 개인적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그냥 집에 있는 게 편하고, 나가더라도 남편하고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부부 동반으로 모이는 게 재밌더라고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엇을 하든 가족이 먼저고,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녀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여자다.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아침부터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하고, 집이 있는 판교는 보는 시선이 많지 않아 그 언저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편하다. 여기까진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 좀 특별한 게 있다면 둘 다 집 구경을 하는 걸 좋아해서 집 보러 자주 다녀요. 주택, 빌라, 아파트, 가리지 않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는 정말 둘이 죽이 잘 맞아요. 우리가 집을 보면 살 것처럼 보이나 봐요. 엄청 으리으리한 집도 쉽게 구경하게 해줘요.”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룩희까지 가세해 아들과 남편, 이 두 남자는 지금 그녀에게 세상에 더없이 좋은 친구다. 화보 촬영이 있던 날도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더니 픽업 오기로 한 남편을 만나러 쌩하니 나가 스태프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어느새 다섯 살. 빠른 아이 같으면 슬슬 한글을 깨치기 시작할 텐데, 그녀의 교육 방식에 대해 물었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긴 한데, 하루 4시간이 전부예요. 그것 말곤 특별히 하는 것 없이 놀게 해요. 4~5세부터 영어 시험 보고, 한문 시험 보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데, 지금 시켜봐야 얼마나 배울까 싶더라고요.”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나이가 되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네 살이 되던 해에 ‘ㄱ’ 자를 깨치는 데 30분이 걸렸다면 다섯 살 때는 그 시간이 15분으로 단축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일곱 살이 되면 더 빠를 거라는 것이 그녀의 논리다.
made in 손태영
손태영의 일상을 이야기할 때 가족을 빼놓을 수 없듯, 그녀 가족을 이야기하자면 패밀리 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 떴다 하면 연일 화제가 되는, 무심한 듯 시크한 패밀리 룩. 그 실체는 전적으로 손태영의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 “같이 맞춰 입는 건 아닌데, 남편도 그렇고 룩희도 제가 옷을 사다 입히니까 스타일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요. 오빠의 경우, 결혼 전에는 스타일리스트가 픽업한 옷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는 식으로 쇼핑을 했대요. 지금은 저한테 다 맡겨요. 외출 전에 저한테 그날 골라 입은 옷에 대해 묻곤 하는데, 아닌 것 같다고 하면 바로 바꿔 입어요.” 사진을 쭉 놓고 보니 무채색 일색에 심플한 디자인으로, 손태영의 스타일이 한눈에 보인다. 결혼 초에는 파파라치 컷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녀의 일상들. 하지만 요즘에는 스스로 SNS를 통해 심심찮게 가족 사진을 올리곤 한다. 여느 엄마들처럼 그녀도 아이가 커가는 기특한 모습을 기록하고 싶고 지인들에게 보이고 싶다. 그때만큼은 평범한 여자가 된다.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어요. 그 오랜 습관이 몸에 배어 느슨하게 있거나 흐트러진 자세가 저는 불편해요. 늘 꼿꼿하게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편이죠. 그게 몸매를 잡아주는 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임신했을 때도 입덧하느라 초반에 4kg이 빠진 탓에 6kg 정도밖에 체중이 불지 않았다. 늘 몸의 밸런스를 유지해온 그녀도 이제 나잇살이라는 걸 실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특히 팔뚝과 뱃살. 많은 사람들이 묻지만 방법은 언제나 딱 하나뿐이란다. 탄력을 잃어가는 나잇살을 올려붙이는 데는 운동만 한 게 없다. 식이요법으로 몸무게는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탄력을 되찾을 순 없다고. 인터뷰 말미에 <우먼센스> 300호 특집, ‘버킷리스트’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자로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지금은 아직 아이가 어려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은 하지 못하지만, 배우의 길로 들어선 이상 사람들에게 ‘연예인’이 아닌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가정과 일, 그 둘 중 하나를 우선순위로 둘 수 없더라고요. 배우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모두 당당하고 싶어요. 가까운 미래인 내년쯤엔 딸을 낳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남편에게서 ‘당신 같은 아내를 만나서 너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것 하나로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다 사라질 것 같아요.” 행복한 가정을 이룬 한 여자, 이미 그녀는 버킷리스트의 절반쯤은 이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