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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심장을 ‘바운스’ 가왕 조_용_필 인터뷰

콘서트 티켓 매진은 물론 해적판까지 나도는 음반의 주인공. 싸이, 이효리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시점에 음반을 내놓은 대담함의 최고봉. 64세의 가왕 조용필 얘기다. 10년 만에 컴백한 원조 오빠 조용필과의 인터뷰.

On October 15, 2013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 그리고 조용필 CD. 장 보러 나온 주부들 카트에 웬일로 음반이 실리고 있다. 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 내놓는 곳마다 날개 돋친 듯 팔리니 불법 복제 음반까지 판을 친다. 무엇이 짠순이 아줌마들 주머니까지 열게 만드는 것일까?
지난 5월 15일 저녁. 이태원 한 레스토랑에 요즘 최고 상종가를 치고 있는 ‘용필이 오빠’가 트레이드마크인 옅은 선글라스를 낀 채 나타났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말주변이 없어 얘기를 잘할지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했지만, 중간중간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용어까지 구사하며 45년 내공을 자연스레 뿜어냈다.
“솔직히 사람들의 반응이 좋기도 하지만 겁나기도 합니다. 이러다 뭐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앨범 수록곡 10곡 모두가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랐어요. 지금의 나를 두고 어디서는 ‘신드롬’이라고 표현하는데, ‘과연 지금 내가 히트한 것일까? 내가 인기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 머리가 나빠서인지, 워낙 무뎌서인지 잘 못 느끼는 부분도 있고요, 인터넷에 저에 대한 글도 많이 올라온다던데, 너무 빠져들어 컨트롤할 수 없으면 안 되니 하루에 한 번 정도만 체크합니다.(웃음)”
아니, 가요계의 ‘가왕’께서 인기를 실감치 못하다니. 하지만 다 이유가 있다.
“평소 저는 집, 사무실, 스튜디오 이 세 군데 외에는 잘 다니지 않아요. 식당은 한 달에 한 번 친구가 하는 곳에 가는 게 전부이고요. 그것도 조심스러워서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번 앨범이 나오고 제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전화를 해옵니다. 제가 친구들한테는 미리 전화를 해뒀어요. 당분간은 만날 수 없을 테니 양해를 해달라고요. 지금껏 이렇게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음악만 하다 보니 아는 게 없어요. 음악 외에는 ‘멘붕’ 상태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10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을 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가요계 트렌드는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고, 가요계 대선배로서 자존심도 지켜야 했을 테니 말이다.
“10년 전에 18집을 내고서 든 생각이 ‘음악 많이 듣자’였어요. 그래서 매일같이 빌보드 100위까지 오른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도저히 나는 안 되는구나.’ 안 되는 이유는 들은 노래와 비슷하게 만들면 카피가 되는 거잖아요. 요즘엔 코드만 같아도 카피라고 하니 곡 작업이 힘들어요. 그래서 음악 하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교류도 많이 합니다.”


"평소 저는 집, 사무실, 스튜디오 세 군데 이상 가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식당은 한 달에 한 번 친구가 하는 곳에 가는 게 전부이고요.지금껏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음악만 하다 보니 아는 게 없어요. 음악 외에는 ‘멘붕’ 상태죠"

앨범 중 ‘헬로’가 가장 맘에 들었는데, ‘바운스’를 먼저 띄우는 바람에 묻힌 감이 있어요. 40만 장 넘으면 시청 앞에서 공연하겠습니다. 선글라스요? 늙어 보여서 안 벗을랍니다.(웃음)

조용필은 10곡 중 9곡을 국내외, 기성 및 신인 작곡·작사가들에게 받았다. 까마득한 후배 버벌진트는 그와 함께 앨범 작업을 한 후 가요계의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천하의 조용필이 ‘조용필 앨범에 조용필이 안 보여 아쉽다’는 일부 칼럼니스트들의 글이 나올 만큼 180도 변신한 이유는 뭘까?
“그동안은 ‘이건 나하고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이건 누가 뭐라고 할 것 같아서’ 이런 이유로 많은 곡을 지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용기 같은 게 났어요. 나도 한번 해보자는. 그래서 나와 맞을 것 같은 곡을 과감하게 고른 거고요.”
이번 앨범이 40~50대에게 어필할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10~30대, 남녀노소 누구나 그의 노래에 어슬렁거리다 푹 빠지고 있는 상황은 그 역시 놀랍다. 어린아이들까지 조용필 ‘할아버지’를 연호하며 따라 부르는 데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 보컬이 한몫한 듯하다. 또 모던 록과 일렉트로닉이라는 젊은 조류를 받아들인 것도 핵심 이유.
“이번 앨범 중 ‘헬로’가 가장 맘에 들었는데, ‘바운스’를 먼저 띄우는 바람에 묻힌 감이 있어요. ‘바운스’는 원래 피아노 전주 없이 통기타로만 되어 있었는데 피아노를 나중에 집어넣었어요. 그랬더니 리듬감도 훨씬 살아났고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는 해외를 수시로 오가며 맘에 안 드는 부분을 수정했다. 미국의 음반 제작진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나 싶어 한국에 없는 음악 장비를 외국에서 전부 공수해 오는가 하면, 런던에선 한국 스태프들이 도저히 모르겠는 음악적 노하우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얻어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최선을 다했다, 조용필은. 그 노력의 열매가 ‘찬란하게’ 나타난 것이다.
‘환갑 넘어서 이 목소리, 이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대한민국에 또 누가 있을지?’ ‘아들뻘인 내가 들어도 촌티는커녕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수많은 네티즌과 언론의 찬사는 그의 컴백을 기다렸다는 듯 축복하고 있다. 단지 노래를 잘 부르는 가왕이 아니라, 전 세대를 연결해주고 소통시키는 가왕으로 재군림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절 보고 ‘가왕’이라고 하는데 사실 좀 부담스러워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싱어 킹? 그것도 좀 애매한 것 같고요. 해외 나가서 저를 가왕이라고 소개한다면 참 쑥스럽기 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전 제일 좋은 게 그냥 ‘조용필씨’예요. 가왕의 무게보다는 조용필의 무게가 더 좋습니다.”
그는 단 한 차례의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출연 없이 연속으로 1위를 거머쥐고, 음원 및 음반 차트 1위를 연신 갈아치우고 있다. 적잖은 나이에 라이브로 노래하는 게 힘에 부치진 않을까? 특히 이번 노래는 간주가 안 보이던데.
“요즘 음악적 흐름을 보면 전 세계 히트곡의 대부분이 전주가 짧고 간주와 엔딩이 없어요. 3분 20초 안에도 메시지는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이번 제 노래 대부분은 간주가 없이 스트레이트로 가는 게 특징입니다. 노래를 부를 때는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게 가수죠.”
덧붙여 그는 후배 가수들이 지나치게 퍼포먼스에 치중하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퍼포먼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프로듀서와 가수 기획자들이 얼마만큼 가수의 매력을 빼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고요. 퍼포먼스가 50%를 넘으면 음악적 가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K팝 열풍을 이끌고 있는 후배 가수들에 대해서는 고마움과 대견한 마음을 내비쳤다.
“K팝 주자들이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솔직히 그들을 보면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싸이는 대한민국의 자랑 아닙니까? 솔직히 우리는 꿈도 못 꿨습니다. 미국에서 동양인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노래로…,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걸 해낸 겁니다. 대단하죠. 나중에 꼭 싸이에게 소주 한잔 사주고 싶습니다.”
음악 외에 다른 꿈이 있을까?
“와이프가 있을 때도 (아내)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저녁 6시 이후엔 외출을 안 했고 항상 규칙적으로 생활해왔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집과 녹음실만 오갔기 때문에 가끔 지겹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게 제가 평생 가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유니버셜 음반 제작사에 따르면 그의 앨범은 현재 19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최다 음반 판매량 37만 장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40만 장 넘으면 시청 앞에서 공연하겠습니다. 선글라스요? 늙어 보여서 안 벗을랍니다.(웃음)”
인정! 당신은 영원한 젊은 오빠니까.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5월 31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 체조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의정부, 대전, 진주, 대구로 이어지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쇼케이스 현장에 가다

팬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차트를 ‘올킬’한 조용필. 젊은 가수들처럼 디지털 싱글을 낸 것도 놀라운데, 그 나이의 가수가 하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쇼케이스’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지난 4월 23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 조용필의 ‘프리미어 쇼케이스-헬로’는 총 25만 명이 실시간으로 관람했다. 이는 웬만한 인기 아이돌 그룹이 앞서 기록한 수치의 2배에 달한다. 사전 접수로 선택된 2천 명의 관객은 조용필이 등장하지 않을 때도 뜨겁게 환호하며 조용필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지난해 ‘조용필처럼’이란 곡으로 데뷔한 팬텀은 “영원히 변치 않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에 ‘조용필처럼’을 불렀는데 이런 영광스러운 무대에까지 초대돼 너무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도 오늘 앨범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선생님께 직접 사인을 받았다. 다음에 또 선생님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가수다2>가 낳은 스타 국카스텐은 <나는 가수다>에서 자신들이 선보였던 ‘모나리자’를 열창했다. 당시 선보인 무대 이상의 열정적 공연을 펼쳐 객석에 모인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다음에 등장한 가수는 역시 <나는 가수다>에서 조용필의 곡을 불렀던 박정현이었다. 박정현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불러 특유의 가창력을 뽐냈는데 “이 무대에서 노래로 인사드릴 수 있는 게 큰 영광이다. 축하하는 의미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는 노래를 불러드렸다”고 했다. ’<나는 가수다> 조용필 스페셜‘ 당시 ‘꿈’을 열창했던 자우림도 무대에 올랐다. 자우림의 ‘꿈’은 특유의 웅장함과 자우림의 몽환적인 느낌이 어우러져 호평을 받았던 곡이다. 자우림 김윤아는 “언제나 새 앨범 내시고 투어하실 때마다 팬들은 물론 후배들도 가슴 두근거리면서 새 음악을 기다려왔다. 이번에도 이렇게 멋진 음반을 발표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우리의 조용필이 돼달라. 선배님, 사랑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후배들의 헌정 공연과 함께 ‘헬로’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걷고 싶다’ ‘설렘’ ‘말해볼까’ ‘그리운 것은’ ‘충전이 필요해’ ‘서툰 바람’ ‘널 만나면’ 등을 감상케 한 조용필은 쇼케이스 후반부에 드디어 관객들 앞에 나섰다. 조용필이 나타나자 2천여 명의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는 ‘헬로’ ‘바운스’ ‘어느 날 귀로에서’ 등 3곡을 라이브로 불렀다. “유 메이크 미 바운스!(You make me bounce!)”란 가사에서는 전 관람객이 함께 노래 불러 어느 아이돌 그룹 콘서트 안 부러웠다.
MC를 맡은 김제동의 애드리브로 예정에 없던 소감을 밝힌 조용필. “내년에 내야지 하다가 10년이 걸렸다. 나는 사실 신인 같은 기분으로 앨범을 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을 줄 몰랐다. 팬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게 뿌듯하게 느껴진다. 최대한 내 색깔을 배제하고자 했다. 이전의 내가 했던 음악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해줄 음반이다. 특히 후배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김제동은 조용필에게 “이제 19집을 내셨으니 열아홉 청년”이라고 했다. 맞다. 청년 조용필이 지금 대한민국을 감동시키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취재
김미영
사진
YPC프로덕션
2013년 06월호
2013년 06월호
기획
하은정
취재
김미영
사진
YPC프로덕션